마태복음 16장에는 흔히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는 장면으로 알려진 본문이 실려 있다. 15절-18절이 그것이다.
예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성구를 해석하는 방식은 대략 이렇다.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이 감동적이어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특히 교황 제도를 가지고 있는 천주교에서 전승되어 온 해석이다. 이 해석으로 교황수위권의 성서적 근거를 제공했고, 교황을 교회 안에서 어떤 다른 권위보다 위에 두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해석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해석을 따르려면 "베드로"와 "반석"이 동일시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어적으로 "베드로"와 "반석"은 동일시 되기 어렵다. 권위 있는 그리스어 사전들은 이 둘이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각 단어의 정의definion에서 명시하고 있다.
흔히 베드로는 "바위"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번역되어야 "반석"에 가깝다. 그러나 베드로의 뜻은 반석이나 바위가 아니라 "돌맹이"이다. "베드로"로 음역된 헬라어는 페트로스πέτρος인데, BDAG는 이 단어가 호메로스 이후로,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해 사용되었고, 그 뜻은 "돌맹이"stone라는 설명으로 뜻풀이를 시작한다.
고전 그리스어 사전인 Liddell&Scott은 페트로스의 정의를 이렇게 시작한다. "'돌맹이'인데, 페트라πέτρα와 구별되어야 한다. 페트로스는 호메로스의 작품 등에서 전사들이 (무기로) 사용하였다." 성경 이야기에서 예를 찾자면,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 사용한 돌맹이가 페트로스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요세푸스가 쓴 <고대전쟁사>는 로마의 침공을 받은 유대인들이 로마에 목숨 건 싸움으로 저항하는 전쟁사가 담겨 있는데, 전투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3장 240절을 대강 번역하면 이렇다.
요세푸스와 함께 싸우는 쪽은(유대인들), 비록 (로마군의) καταπελτικων과 πετροβολων에 의해 한 명씩 쓰러져 갔지만, 성벽을 포기하지 않고, 불과 쇠와 돌맹이를 (로마군)에게 던졌다. |
이 글에서 카타펠티몬καταπελτικων과 페트로볼론πετροβολων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둘 다 투석기로 번역될 수 있는 무기를 말한다. 주목하기 원하는 포인트는 πετρο-βολων(위의 노란 하이라이트)이 돌맹이 던지는 무기라는 점이다. 다음 포인트는 유대인들이 로마군에게 던진 무기 중 하나로 페트로스가 등장한다는 점이다(위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
이렇게 살핀 후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베드로로 음역된 페트로스는 손에 들고 던지거나 투석기를 사용하여 던질 수 있는 크기의 돌이라는 점이다. 바위나 반석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이 반석”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페트라πέτρα이다.
BDAG는 페트라를 어머어마하게 큰 돌, 즉 돌맹이와는 구별되는 엄청나게 큰 바위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요르단의 페트라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사이즈의 엄청나게 큰 바위가 페트라이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반석"은 그렇게 엄청나게 큰 바위덩이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페트라(반석)와 페트로스(베드로)는 동일시 될 수 없다. 예수님 말씀의 뜻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6장 본문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에 봉착한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교회를 세워겠다고 하신 반석이 베드로(페트로스)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면, 반석은 무엇일까? "이 반석"이라고 하셨을 때, "이"라는 지시형용사가 의미하는 바가 베드로라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베드로가 드린 고백 아닐까?
시몬은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이라 고백하였다.
σὺ εἶ ὁ χριστὸς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τοῦ ζῶντος(수 에이 호 크리스토스 호 휘오스 투 쎄우 투 존토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이 고백을 예수님께 드린 시몬을 페트로스라고 하셨다. 페트로스라고 부르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σὺ εἶ Πέτρος(수 에이 페트로스)로서, "이름"과는 연결되는 말씀이 아니다. 시몬을 "작은 돌"이라 하신 후, 그런 돌들 수 천, 수 만개가 함께 해야 이룰 수 있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하신 것이다. 이 말씀에서 페트로스는 페트라와 같은 속성으로 연결된다. 페트로스는 단독자이고 페트라는 집합자이다. 페트로스를 연결하여 페트라를 이루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정확히 꼬집어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정황상 답은 하나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고백. 그런 고백을 가진 작은 돌들이 모여 반석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페트로스라고 부르신 것은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니라, 시몬도 페트라를 이루는 하나의 돌맹이라는 점을 말씀 하신 것이다. 시몬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페트로스(베드로)가 될 수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면 말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그 고백대로 살아가는 작은 돌들이 모여 반석을 이루고, 그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이 말씀은 비유의 말씀이다. 비유는 하나의 강조점을 갖는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강조하신 것은 무엇인가? 페트로스가 모여 페트라가 된다는 것이다. "작은 돌"의 연합(코이노니아)에 강조점이 있다. 교회에 "큰 돌"은 있을 수 없다. 목사도 장로도 큰 돌이 아니다. 교회의 반석되는 페트라는 페트로스의 연합이다.
마태복음 16장에는 흔히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는 장면으로 알려진 본문이 실려 있다. 15절-18절이 그것이다.
예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성구를 해석하는 방식은 대략 이렇다.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이 감동적이어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특히 교황 제도를 가지고 있는 천주교에서 전승되어 온 해석이다. 이 해석으로 교황수위권의 성서적 근거를 제공했고, 교황을 교회 안에서 어떤 다른 권위보다 위에 두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해석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해석을 따르려면 "베드로"와 "반석"이 동일시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어적으로 "베드로"와 "반석"은 동일시 되기 어렵다. 권위 있는 그리스어 사전들은 이 둘이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각 단어의 정의definion에서 명시하고 있다.
흔히 베드로는 "바위"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번역되어야 "반석"에 가깝다. 그러나 베드로의 뜻은 반석이나 바위가 아니라 "돌맹이"이다. "베드로"로 음역된 헬라어는 페트로스πέτρος인데, BDAG는 이 단어가 호메로스 이후로,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해 사용되었고, 그 뜻은 "돌맹이"stone라는 설명으로 뜻풀이를 시작한다.
고전 그리스어 사전인 Liddell&Scott은 페트로스의 정의를 이렇게 시작한다. "'돌맹이'인데, 페트라πέτρα와 구별되어야 한다. 페트로스는 호메로스의 작품 등에서 전사들이 (무기로) 사용하였다." 성경 이야기에서 예를 찾자면,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 사용한 돌맹이가 페트로스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요세푸스가 쓴 <고대전쟁사>는 로마의 침공을 받은 유대인들이 로마에 목숨 건 싸움으로 저항하는 전쟁사가 담겨 있는데, 전투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3장 240절을 대강 번역하면 이렇다.
요세푸스와 함께 싸우는 쪽은(유대인들), 비록 (로마군의) καταπελτικων과 πετροβολων에 의해 한 명씩 쓰러져 갔지만, 성벽을 포기하지 않고, 불과 쇠와 돌맹이를 (로마군)에게 던졌다.
이 글에서 카타펠티몬καταπελτικων과 페트로볼론πετροβολων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둘 다 투석기로 번역될 수 있는 무기를 말한다. 주목하기 원하는 포인트는 πετρο-βολων(위의 노란 하이라이트)이 돌맹이 던지는 무기라는 점이다. 다음 포인트는 유대인들이 로마군에게 던진 무기 중 하나로 페트로스가 등장한다는 점이다(위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
이렇게 살핀 후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베드로로 음역된 페트로스는 손에 들고 던지거나 투석기를 사용하여 던질 수 있는 크기의 돌이라는 점이다. 바위나 반석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이 반석”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페트라πέτρα이다.
BDAG는 페트라를 어머어마하게 큰 돌, 즉 돌맹이와는 구별되는 엄청나게 큰 바위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요르단의 페트라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사이즈의 엄청나게 큰 바위가 페트라이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반석"은 그렇게 엄청나게 큰 바위덩이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페트라(반석)와 페트로스(베드로)는 동일시 될 수 없다. 예수님 말씀의 뜻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6장 본문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에 봉착한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교회를 세워겠다고 하신 반석이 베드로(페트로스)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면, 반석은 무엇일까? "이 반석"이라고 하셨을 때, "이"라는 지시형용사가 의미하는 바가 베드로라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베드로가 드린 고백 아닐까?
시몬은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이라 고백하였다.
σὺ εἶ ὁ χριστὸς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τοῦ ζῶντος(수 에이 호 크리스토스 호 휘오스 투 쎄우 투 존토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이 고백을 예수님께 드린 시몬을 페트로스라고 하셨다. 페트로스라고 부르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σὺ εἶ Πέτρος(수 에이 페트로스)로서, "이름"과는 연결되는 말씀이 아니다. 시몬을 "작은 돌"이라 하신 후, 그런 돌들 수 천, 수 만개가 함께 해야 이룰 수 있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하신 것이다. 이 말씀에서 페트로스는 페트라와 같은 속성으로 연결된다. 페트로스는 단독자이고 페트라는 집합자이다. 페트로스를 연결하여 페트라를 이루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정확히 꼬집어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정황상 답은 하나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고백. 그런 고백을 가진 작은 돌들이 모여 반석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페트로스라고 부르신 것은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니라, 시몬도 페트라를 이루는 하나의 돌맹이라는 점을 말씀 하신 것이다. 시몬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페트로스(베드로)가 될 수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면 말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그 고백대로 살아가는 작은 돌들이 모여 반석을 이루고, 그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이 말씀은 비유의 말씀이다. 비유는 하나의 강조점을 갖는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강조하신 것은 무엇인가? 페트로스가 모여 페트라가 된다는 것이다. "작은 돌"의 연합(코이노니아)에 강조점이 있다. 교회에 "큰 돌"은 있을 수 없다. 목사도 장로도 큰 돌이 아니다. 교회의 반석되는 페트라는 페트로스의 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