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잠언의 “음녀(זָרָה 자라)”에 대한 묵상

송민원
2022-07-07
조회수 1397


1. “음녀”로 번역된 경우

구약성경의 개역개정(4판)에서 “음녀”라는 번역은 총 17번 나옵니다(신약 6회). 그 중에 원어에서 대명사로 표현된 두 경우(잠 7:8, 7:25)와 동사를 번역한 한 경우(사 57:3)를 제외하고 나머지 14번의 경우를 원어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1) זוֹנָה(조나): 잠 6:26, 23:27, 사 23:16, 겔 16;30, 16:35, 나 3:4. (참조: 시 73:27에서는 남성단수 분사형인 זוֹנֶה(조네)가 사용되었음에도 개역개정은 “음녀”로 번역하였습니다)

2) מְנָאָפֶת(메나아페트): 잠 30:20, 호 3:1

3) זָרָה(자라): 잠 2:16, 5:3, 5:20, 7:5, 22:14(복수형 זָרוֹת자롯트)


2. 어원과 용례

이 중 1) זוֹנָה(조나)는 사회적/종교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성관계를 가리키는 어근 자나(זנה)의 파생어(여성단수 분사)입니다. 남편이 죽은 다말이 임신한 경우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고(창 38:24), 아버지와 딸 사이의 근친상간의 경우(레 21:9), 처녀성을 잃은 신부(신 22:21) 등에 사용됩니다. 에스겔 16장에서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זוֹנָה(조나)가 쓰였고, 잠언 6:26에서는 외간 남자를 유혹하는 유부녀(אֵשֶׁת אִישׁ 에쉐트 이쉬)와 평행어로서 ‘행음하는 여인(אִשָּׁה זֹונָה 잇샤 조나)’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두번째 표현인 2) מְנָאָפֶת(메나아페트)는 십계명의 “간음하지 말라(출 20:14, 신 5:18)”라는 명령에서 쓰인 어근 나아프(נאף)의 피엘 여성 분사형으로, 그 의미는 זוֹנָה(조나) 보다는 좁은 의미로 타인의 배우자와 성관계를 갖는 경우를 지칭합니다(레 20:10, 렘 29:23). זוֹנָה(조나)와 마찬가지로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쓰입니다(렘 3:9, 5:7, 7:9, 겔 23:37 등).

반면에 3) זָרָה(자라)의 어원은 위의 두 단어와는 다릅니다. 어근 זור(주르)는 낯설고 다른 것이나 타국의 것(strange, different, heterogeneous)을 가리킵니다(HALOT 참조). 주로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방인을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출 29:33, 사 1:7, 사 25:2, 61:5, 렘 5:19, 30:8, 51:51, 겔 7:2, 11:9, 28:7, 28:10, 30:12, 31:12, 호 7:9, 8:7, 욜 4:17, 옵 1:11, 시 109:11 등). 구약의 운문에서는 외국 태생을 가리키는 נָכְרִי(노크리)의 평행어이자, 이웃/친구를 가리키는 레아(רֵעַ)의 반대말로 주로 쓰입니다.


3. 번역자의 이중잣대

어근 זור(주르)의 남성형이 나오는 경우 잠언은 모두 “타인”이라고 번역합니다(잠 5:10, 5:17, 6:1, 11:15, 14:10, 20:16). 몇 가지 예를 보자면,

잠 5:10 두렵건대 타인(זָרִים 자림)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נָכְרִי 노크리)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잠 6: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רֵעַ 레아)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זָר 자르)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이처럼 남성명사의 경우 개역개정은 한결같이 어원의 의미를 살려 “타인”이라고 번역하는 반면, 여성명사의 경우는 낯선 여인이나 외국 여인이라는 본래적 의미가 아닌 “음녀”라는 번역어를 선택합니다. 참고로, 음녀(淫女)의 사전적 정의는 “성격이나 행동이 음란하고 방탕한 여자”(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개역개정뿐 아니라 새번역(“음란한 여자”)과 공동번역(“탕녀”)도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에서 זָרָה(자라)는 남성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נָכְרִיָּה(노크리야, 개역개정 “이방 계집”)와 평행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잠 2: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זָרָה)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נָכְרִיָּה)에게서 구원하리니

           잠 5: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זָרָה)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נָכְרִיָּה)의 가슴을 안겠느냐

           잠 7: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זָרָה)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נָכְרִיָּה)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히브리 운문의 평행법(parallelism)의 관점에서 보아도 “음녀”와 “이방 계집, 이방 여인”은 의미상 연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낯선(strange),’ 혹은 ‘다른(different)’ 것을 가리키는 본래적 의미가 ‘외국(foreign)’을 지칭하는 נָכְרִי(노크리)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4. 외국인에 대한 공포(xenophobia)와 성차별(sexism)의 결합 

주변 강대국들의 공격에 노출되거나 굴복한 시대의 이스라엘(포로기 전후)에게 ‘외국’ 혹은 ‘이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는 상당했을 것입니다. 자국의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정체성을 극도로 위협하는 존재가 바로 ‘다른 나라’들이었을 것이고, 그 나라들은 아시리아와 바빌론 등의 거대한 제국을 지칭합니다. 이 시기를 반영한 선지서들에서 특히 타국에 대한 공포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사 1:7, 렘 51:51, 겔 28:7, 28:10, 호 7:9 등). 이 외국의 것들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파괴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뿌리부터 흔들어 버리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낯선 것과 이방에 대한 공포가 고대 이스라엘의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에게 투영됩니다. ‘낯선 여인(זָרָה)’과 ‘외국 여인(נָכְרִיָּה)’은 젊은이로 하여금 지혜(חָכְמָה 호크마)에서 멀어지게 하며, 악과 멸망으로 빠지게 하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가부장제의 남성주의적 관점에서는 여성의 상이 ‘여신’ 아니면 ‘음녀’로 양극화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숭고한 어머니, 순결한 처녀를 한 극단으로 하고, 타락하고 유혹하는 창녀의 상이 그 반대편에 위치합니다. 잠언의 여성상이 “지혜”와 “음녀”로 양분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