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잠언 31장 “현숙한 여인(에쉐트 하일 אֵשֶׁת־חַיִל)”에 대한 묵상

송민원
2022-06-16
조회수 3557

잠언 31장에 나오는 여인은 대체 어떤 여인일까요?  

          

[개역개정]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31:10)


쉬운성경과 현대인의성경은 개역의 번역과 마찬가지로 “현숙한 여인”으로 번역했습니다. 반면에, 공동번역은 “어진 아내”로, 새번역은 “유능한 아내”로 번역했습니다. “현숙한”과 “어진”과 “유능한”은 의미의 범주가 다른 형용사입니다. “현숙한”은 지혜롭고 정숙한 동양적인 현모양처를 표현하는 번역이라면, “어진”은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다는 성격적 측면이 강조된 번역입니다. 현숙과 어짊은 의미상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마음이 착하다고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고, 똑똑하다고 다 너그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새번역의 “유능한”은 성격이 아니라 능력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있을까요? 본문의 특정한 단어나 구절은 반드시 그것이 포함된 큰 문맥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잠언의 마지막 장인 31장의 “현숙한 여인”을 문맥 안에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어원적 측면

어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유능한”으로 번역한 새번역에 한 표를 주겠습니다. 히브리어 ‘하일’(חַיִל)의 뜻은 “힘”과 “능력”입니다. “힘/능력”이란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 속뜻이 달라지는 의미의 폭이 넓은 추상명사입니다. 여호수아나 다윗이 처한 전쟁의 상황에서는 전투력이 곧 능력일 터이고, 룻과 나오미 같은 가난한 일가친척을 두고 있는 보아스 같은 경우라면 경제력이 곧 힘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한글성경에서 상당히 여러 가지로 번역됩니다. 개역한글을 예로 들자면, 히브리어 ‘하일’은 “재물”(창 34:29), “능한 자”(창 47:6), “군대”(출 14:4), “재덕이 겸전한 자”(출 18:21)ְ “용맹”(삼상 14:52)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었습니다. 입다(삿 11:1)나 여로보암(왕상 11:28), 사울(삼상 14:52), 나아만(왕하 5:1)과 같은 사람을 묘사하는 단어로 ‘하일’이 쓰일 때는 주로 “용사”나 “용맹한 자” 등으로 해석했고, 보아스(룻 2:1)나 기스(삼상 9:1)의 경우에는 “유력한 자”, “유력한 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예들은 모두 남자를 지칭하는 경우로서, 그 어느 경우도 “어진” 성격을 나타내거나 “지혜롭고 정숙한” 유교적 품성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2) 문맥적 측면

문맥적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31장은 아주 길게 이 여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1: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31: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이 두 구절만 보면 가사일에 충실한 동양적 현모양처의 이미지에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잠언은 계속해서 이 여인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31: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31:16 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집안일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식을 구하러 집 바깥 아주 멀리도 나가며, 부동산 구입과 관리도 도맡아 합니다. 만든 옷과 띠를 팔고(24절), 밤 늦도록 장사를 하며(18절),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제행위에도 솔선수범합니다(20절). 어질거나 착한 성격을 나타낸 공동번역이나 현모양처라는 유교적 품성을 부각시킨 개역번역으로는 잠언 31장에서 묘사하는 여인의 특질들을 다 포괄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집의 안과 밖을 다 관할하며 사업수단까지 좋은 여자를 “어진”이라는 형용사로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문맥으로 보아서도 새번역의 “유능한 아내”가 가장 적절해 보입니다.

 

3) 성경번역자의 태도 문제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번역자의 태도입니다. 개역이나 공동번역을 번역하신 분은 히브리어 단어 ‘하일’의 기본적인 뜻이 “힘/능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에는 대부분 이 기본적인 의미를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단어가 여성에게 적용될 때는 “현숙한” 혹은 “어진”이라는, 남성에게는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새번역처럼 “유능한 아내”로 번역하는 것이 특별히 문맥에 맞지 않거나 표현이 어색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역과 공동번역의 번역자는 잠언 31장의 일부 구절에만 해당되는 유교적 현모양처의 프레임으로 본문의 의미를 가둬 놓고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것은 텍스트에 대한 ‘폭력’입니다.

또한 번역자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여성의 능력이며 착하고 어진 것이 여성의 힘이라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 “현숙한”이 “능한”이나 “재덕을 겸전한”과 같은 단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독자는 잠언 31장을 현모양처라는 유교적인 틀 안에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독자에 대한 ‘폭력’입니다. 원문과 독자를 연결하는 전달자로서, 번역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태도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