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27번 사용된 동사가 있는데, 그 중에 22번이나 바울서신들에 쓰인 단어는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이다. 이 단어는 전치사 κατά (카타)와 동사 ἀργέω (아르게오, 멈추다)로 만들어진 복합동사이다. ἀργέω (아르게오)는 부정 접두어 ἀ와 ἔργω(에르고, 일하다)를 가진 동사이다. ἀργέω (아르케오)는 ‘일을 멈추다’ ‘효과나 쓸모가 없다’ ‘지체하다’ ‘게을러지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동사에 다시 전치사 접두어 κατά (카타)가 붙어서 타동사의 뜻을 강화하고 있다.
동사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는 문맥에서 의미가 조금씩 다른 세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문자적 의미로서, ‘쓸모가 없다’ ‘힘이 없어지다’의 뜻을 가졌는데, 누가복음 13:7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면서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며 “땅만 버렸다”(카타르게오, waste)고 하셨다. 땅의 생산력을 멈추게 해 버렸다는 뜻이다.
둘째, 카타르게오는 은유적으로 발전하여서 ‘없애다’ ‘폐지하다’(nullify)의 뜻으로 사도 바울은 사용한다(롬 3:3; 4:14).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폐지되어야 할 것과 폐지되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신학적 주장에서 καταργέω(카타르게오)를 자주 사용한다(롬 3:31; 6:6; 엡 2:15; 고전 13:8; 갈 3:17). 그리고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과 존재에 대한 멸망과 심판을 뜻하는 단어로 확장되어 사용되었다(고후 15:24, 26; 살후 2:8). 바울이 사용하는 능동태 타동사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의 주어는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이 부각되었다(고전 1:28; 2:6; 7:13; 15:24; 고후 6:13). 하나님의 폐지, 제거, 심판의 대상들이기에 이 단어의 목적어들은 부정적인 대상들이다(고전 15:26; 딤후 1:10).
셋째, καταργέω(카타르게오)는 긍정적 측면으로 강조되어서, 수동태의 형태로서 ‘자유를 얻다’ ‘해방되다’ ‘면제되다’의 뜻을 가지게 되어서, 부정적인 존재로부터 자유와 면제를 누리게 됨을 말하는데 사용되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결혼의 법에서 해방되는 여인처럼(롬 7:2), 예수의 죽음으로 그리스도인은 얽매이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된다(롬 7:7, κατηργήθημεν ἀπὸ τοῦ νόμου). 수동태의 형태로서 ‘없어지다, 사라지다’의 뜻으로 사용되어,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지만(카타르게쉬손타이 καταργηθήσονται 고전 13:8), 예언과 방언, 지식과 같은 부분적인 것은 결국 사라진다(카타르게쉐세타이καταργηθήσεται, 고전13:8, 10).
사도 바울은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가 가진 고전적이고 본래적 의미로서 활동하지 않는(inactive), 작동하지 않는(inoperative), 소용없는(useless), 일하지 않는(unworked) 등의 의미를 종교적 교리적 의미를 가진 은유로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역사로서 폐지되어서 어떤 활동이나 역할을 하지 못해야 할 것이 율법주의, 육신의 정욕, 죄와 사망의 권세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폐지되었고 사라져야 할 것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영적 혼란과 방종을 가져올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얽매이게 하고 무겁게 했던 죄의 짐을 폐지하시고 자유롭게 해 주신 결과가 그리스도인의 존재라면, 우리는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하여 영적 자유와 기쁨을 가지고 그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폐지하신 것을 다시 붙들고 있는 우리와 교회의 모습이 있다면, ‘폐지’를 선언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바울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에 27번 사용된 동사가 있는데, 그 중에 22번이나 바울서신들에 쓰인 단어는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이다. 이 단어는 전치사 κατά (카타)와 동사 ἀργέω (아르게오, 멈추다)로 만들어진 복합동사이다. ἀργέω (아르게오)는 부정 접두어 ἀ와 ἔργω(에르고, 일하다)를 가진 동사이다. ἀργέω (아르케오)는 ‘일을 멈추다’ ‘효과나 쓸모가 없다’ ‘지체하다’ ‘게을러지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동사에 다시 전치사 접두어 κατά (카타)가 붙어서 타동사의 뜻을 강화하고 있다.
동사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는 문맥에서 의미가 조금씩 다른 세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문자적 의미로서, ‘쓸모가 없다’ ‘힘이 없어지다’의 뜻을 가졌는데, 누가복음 13:7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면서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며 “땅만 버렸다”(카타르게오, waste)고 하셨다. 땅의 생산력을 멈추게 해 버렸다는 뜻이다.
둘째, 카타르게오는 은유적으로 발전하여서 ‘없애다’ ‘폐지하다’(nullify)의 뜻으로 사도 바울은 사용한다(롬 3:3; 4:14).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폐지되어야 할 것과 폐지되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신학적 주장에서 καταργέω(카타르게오)를 자주 사용한다(롬 3:31; 6:6; 엡 2:15; 고전 13:8; 갈 3:17). 그리고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과 존재에 대한 멸망과 심판을 뜻하는 단어로 확장되어 사용되었다(고후 15:24, 26; 살후 2:8). 바울이 사용하는 능동태 타동사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의 주어는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이 부각되었다(고전 1:28; 2:6; 7:13; 15:24; 고후 6:13). 하나님의 폐지, 제거, 심판의 대상들이기에 이 단어의 목적어들은 부정적인 대상들이다(고전 15:26; 딤후 1:10).
셋째, καταργέω(카타르게오)는 긍정적 측면으로 강조되어서, 수동태의 형태로서 ‘자유를 얻다’ ‘해방되다’ ‘면제되다’의 뜻을 가지게 되어서, 부정적인 존재로부터 자유와 면제를 누리게 됨을 말하는데 사용되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결혼의 법에서 해방되는 여인처럼(롬 7:2), 예수의 죽음으로 그리스도인은 얽매이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된다(롬 7:7, κατηργήθημεν ἀπὸ τοῦ νόμου). 수동태의 형태로서 ‘없어지다, 사라지다’의 뜻으로 사용되어,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지만(카타르게쉬손타이 καταργηθήσονται 고전 13:8), 예언과 방언, 지식과 같은 부분적인 것은 결국 사라진다(카타르게쉐세타이καταργηθήσεται, 고전13:8, 10).
사도 바울은 καταργέω (카타르게오)가 가진 고전적이고 본래적 의미로서 활동하지 않는(inactive), 작동하지 않는(inoperative), 소용없는(useless), 일하지 않는(unworked) 등의 의미를 종교적 교리적 의미를 가진 은유로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역사로서 폐지되어서 어떤 활동이나 역할을 하지 못해야 할 것이 율법주의, 육신의 정욕, 죄와 사망의 권세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폐지되었고 사라져야 할 것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영적 혼란과 방종을 가져올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얽매이게 하고 무겁게 했던 죄의 짐을 폐지하시고 자유롭게 해 주신 결과가 그리스도인의 존재라면, 우리는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하여 영적 자유와 기쁨을 가지고 그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폐지하신 것을 다시 붙들고 있는 우리와 교회의 모습이 있다면, ‘폐지’를 선언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바울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