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서 29번이나 자주 사용된 단어가 μισθός(미스토스)이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뜻은 노동이나 일에 대한 대가로서의 약속된 품삯(wage, pay)을 말한다(마 20:8; 눅 10:7; 요 4:36) 하루 혹은 한달, 혹은 한해의 일에 대한 삯을 뜻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뜻이 있는데, 자진해서 행한 희생이나 일에 대한 보상(reward)을 말하기도 한다(마 6:2; 막 9:41; 눅 6:34-35; 고전 9:1; 계 22:12 ). 즉 격려하고 칭찬하는 의미가 담긴 상급(reward)을 뜻하는 말이다.
고전 헬라어에서 μισθός(미스토스)는 보상이 내세의 축복보다는 사람이나 신들에 의해서 정의의 실현으로 현세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결국 명예와 명성을 가지는 것, 좋은 제자들을 가지게 된 것들을 보상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보상의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으로 내세의 보상과 심판이 담긴 보상을 의미하였다(막 9:41; 눅 6:23; 계 11:18; 22:12). 고전 헬라어 μισθός (미스토스)에는 더 다양한 뜻이 있었다. 전문적 직업인 예술가, 연설가, 학자들, 의사들의 활동에 대한 비용(fee, compensation), 일과 행사에 소용되는 비용(expenses). 군인의 복무에 대한 월급(pay), 뇌물(bribe)을 뜻하는 말이었다. 특별한 뜻도 있는데, 땅이나 집을 돈을 주고 일시적으로 빌리는 것을 뜻하기도 하였다(rent). 이 뜻의 단어에서 유래된 명사가 μίσθωμα(미스토마)인데, 세(rent)를 뜻하기도 하고 세를 내어 빌린 건물이나 집을 뜻하였다(셋집, 행 28:30).
μισθός(미스토스)와 관련된 일련의 단어들이 신약성경에 보이는 데, 품삯을 주기로 하고 고용된 일꾼을 뜻하는 μισθωτός(미스토또스)가 있다(막 1:20; 요 10:12). μισθός(미스토스)의 동사는 μισθόω(미스토오, hire)인데, 신약성경에서는 중간태 μισθώσασθαι(미스토사스타이)로만 사용되었다(마 20:1, 7).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μισθός(미스토스)와 관련된 단어군들이 49번이나 나오지만, 이 단어들의 뜻이 다른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기에 어휘의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12번이나 예수의 입술에서 사용되었고, 7번은 바울서신에서 사용된 것을 보면, 이 단어가 가진 신학적 의미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예수의 전승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삶의 보상과 그렇지 않는 삶에 대한 형벌을 분명히 하는 ‘보상과 형벌’(retribution)의 현세와 내세를 강조하였다(막 9:41; 마 5:12; 눅 6:35; 10:7; 마 23:37-39).
바울은 μισθός (미스토스)를 긍정적이면서도 또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긍정적인 뜻으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이 받게 될 보상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니,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μισθός)을 받으리라”(고전 3:8).
복음의 사역자들은 일한 대로 상을 받고, 심은 대로 거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그런데 바울은 사역자들은 일하면서 μισθός(미스토스, 보상)을 생각하겠지만, 결코 이것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의롭게 여겨진다’는 것을 보상처럼 생각하지 않도록 말한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미스토스μισθός)이 은혜(카리스 χάρις)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오페이레마 ὀφείλημα)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롬 4:4-7)
바울은 믿음의 의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얻는 의는 결코 당연한 보수(오페이레마 ὀφείλημα)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카리스χάρις)로 값없이 주어진 것임을 강조했다. 이신득의는 결코 μισθός(미스토스)가 아니라고 말하며, 특별히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사역자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를 말하고 있다. 일하는 사역자는 품삯(미스토스μισθός)을 받게 되겠지만, 결코 당연한 보수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받았기에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처럼 보상을 받기 위해 자선을 하는 것은 위선이다(마 6:2).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일하는 것과 불의한 일을 위해 일하는 것은 불의의 삯(μισθός)이 되는 것이다(벧후 2:13, 15).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사역자로서 일하고 있다. 바울의 말처럼 일하는 자가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마땅한 보수와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거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말씀하였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Freely given, freely give!” (마 10:8)
신약성경에서 29번이나 자주 사용된 단어가 μισθός(미스토스)이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뜻은 노동이나 일에 대한 대가로서의 약속된 품삯(wage, pay)을 말한다(마 20:8; 눅 10:7; 요 4:36) 하루 혹은 한달, 혹은 한해의 일에 대한 삯을 뜻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뜻이 있는데, 자진해서 행한 희생이나 일에 대한 보상(reward)을 말하기도 한다(마 6:2; 막 9:41; 눅 6:34-35; 고전 9:1; 계 22:12 ). 즉 격려하고 칭찬하는 의미가 담긴 상급(reward)을 뜻하는 말이다.
고전 헬라어에서 μισθός(미스토스)는 보상이 내세의 축복보다는 사람이나 신들에 의해서 정의의 실현으로 현세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결국 명예와 명성을 가지는 것, 좋은 제자들을 가지게 된 것들을 보상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보상의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으로 내세의 보상과 심판이 담긴 보상을 의미하였다(막 9:41; 눅 6:23; 계 11:18; 22:12). 고전 헬라어 μισθός (미스토스)에는 더 다양한 뜻이 있었다. 전문적 직업인 예술가, 연설가, 학자들, 의사들의 활동에 대한 비용(fee, compensation), 일과 행사에 소용되는 비용(expenses). 군인의 복무에 대한 월급(pay), 뇌물(bribe)을 뜻하는 말이었다. 특별한 뜻도 있는데, 땅이나 집을 돈을 주고 일시적으로 빌리는 것을 뜻하기도 하였다(rent). 이 뜻의 단어에서 유래된 명사가 μίσθωμα(미스토마)인데, 세(rent)를 뜻하기도 하고 세를 내어 빌린 건물이나 집을 뜻하였다(셋집, 행 28:30).
μισθός(미스토스)와 관련된 일련의 단어들이 신약성경에 보이는 데, 품삯을 주기로 하고 고용된 일꾼을 뜻하는 μισθωτός(미스토또스)가 있다(막 1:20; 요 10:12). μισθός(미스토스)의 동사는 μισθόω(미스토오, hire)인데, 신약성경에서는 중간태 μισθώσασθαι(미스토사스타이)로만 사용되었다(마 20:1, 7).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μισθός(미스토스)와 관련된 단어군들이 49번이나 나오지만, 이 단어들의 뜻이 다른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기에 어휘의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12번이나 예수의 입술에서 사용되었고, 7번은 바울서신에서 사용된 것을 보면, 이 단어가 가진 신학적 의미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예수의 전승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삶의 보상과 그렇지 않는 삶에 대한 형벌을 분명히 하는 ‘보상과 형벌’(retribution)의 현세와 내세를 강조하였다(막 9:41; 마 5:12; 눅 6:35; 10:7; 마 23:37-39).
바울은 μισθός (미스토스)를 긍정적이면서도 또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긍정적인 뜻으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이 받게 될 보상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니,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μισθός)을 받으리라”(고전 3:8).
복음의 사역자들은 일한 대로 상을 받고, 심은 대로 거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그런데 바울은 사역자들은 일하면서 μισθός(미스토스, 보상)을 생각하겠지만, 결코 이것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의롭게 여겨진다’는 것을 보상처럼 생각하지 않도록 말한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미스토스μισθός)이 은혜(카리스 χάρις)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오페이레마 ὀφείλημα)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롬 4:4-7)
바울은 믿음의 의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얻는 의는 결코 당연한 보수(오페이레마 ὀφείλημα)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카리스χάρις)로 값없이 주어진 것임을 강조했다. 이신득의는 결코 μισθός(미스토스)가 아니라고 말하며, 특별히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사역자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를 말하고 있다. 일하는 사역자는 품삯(미스토스μισθός)을 받게 되겠지만, 결코 당연한 보수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받았기에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처럼 보상을 받기 위해 자선을 하는 것은 위선이다(마 6:2).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일하는 것과 불의한 일을 위해 일하는 것은 불의의 삯(μισθός)이 되는 것이다(벧후 2:13, 15).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사역자로서 일하고 있다. 바울의 말처럼 일하는 자가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마땅한 보수와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거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말씀하였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Freely given, freely give!” (마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