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개역개정)
욥기 23장 10절은 욥기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전통적으로는 회개를 통한 정결로, 그리고 현대 기독교의 익숙한 해석틀로는 고난이라는 훈련(연단)을 통한 성장과 깨달음, 혹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은 의미로 ‘소비’됩니다. 진흙에서 무언가를 빚어내는 토기장이의 이미지가 투영되기도 하지요.
“순금 같이 되어”라는 표현은 순금이 아니었다가 시험의 연단을 통해 불순물이 제거되어 순금으로 제련된다는 해석을 반영하고, 또 독자들을 그러한 해석으로 유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만약 ‘부족하고 무지하고 불순한 욥’이 역경과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거쳐 ‘온전한’ 존재로 변하거나 성장하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빌닷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이 사랑받는 이 구절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번역자의 ‘잔재주’ 혹은 '손기술'이 발휘된 번역입니다. 1) ‘시험하다(test)’라는 의미의 바한(בחן)을 “단련”으로 번역한 것과 2) 히브리어 원문에 없는 “(순금 같이) 되어”라는 표현을 삽입함으로써 원문의 의미를 살짝 뒤틉니다.
* 바한(בחן)의 의미
어근 바한(בחן)은 아람어와 아랍어 등에서 ‘시험하다(examine, test)’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무언가를 철저히 조사하고 꼼꼼히 분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레미야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봅시다.
1) ‘꼼꼼히 살피다’
렘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바한 בחן)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20:12 의인을 시험하사(바한 בחן)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위의 구절들에서 ‘시험하다’라는 동사는 ‘심장을 살피다’ 혹은 ‘폐부와 심장을 보다’라는 표현과 평행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다’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어떤 부족하거나 불순한 것을 찾아내 없애서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의인을 시험하사”라는 표현은 ‘죄를 없애서 의인으로 만들다’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바한 בחן)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에서처럼,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서 있음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시험’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분별하여 사실임을 입증하다’
시험의 목적은 어떤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에게 정탐꾼이 아님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에서 바한(בחן)이 사용됩니다. 이 때 개정개역은 바한을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창 42:15)로 번역합니다.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창 42:16)에서처럼, ‘시험’은 사실 입증을 목적으로 합니다. 개역개정은 이러한 의미의 바한을 “분간”(욥 12:11), “분별”(욥 34:3), “조사”(시 95:9)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을 목적어로 하여 사용된 문장들을 보면 ‘불순물을 제거하다’라는 해석이 부적절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의 그 유명한 십일조 구절에서도 바한이 사용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바한)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하나님을 ‘연단’하고 ‘단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를 확인해 보라는 의미가 분명합니다.
* 욥 23장 10절의 문맥 이해
욥 23장 10절의 바한(בחן)은 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욥 자신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욥 23:8-9절),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욥이 살아온 모든 과정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해 보시면, 즉, 철저히 조사하시면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정결한 자라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라는 것이 10절의 뜻입니다. 이어지는 11-12절(“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그분의 명령을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친구들은 몰라도 하나님만큼은 아실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욥의 자기 이해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8; 2:3)와 동일합니다. 만일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의롭다는 망발을 내뱉을 수 있는가!'라고 욥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첫째, 그러한 생각은 바로 욥을 정죄하는 친구들의 생각과 동일하며, 둘째, 욥을 의인으로 규정하신 하나님의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셈이 됩니다.
* 개역개정 번역에 대한 평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는 번역은 ‘고난과 역경을 통한 성장과 깨달음’이라는 해석틀이 투과된 번역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의 스토리’를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에 욥 23:10은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좋은 번역자와 좋은 해석자는 먼저 좋은 청자(good listener)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텍스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들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은 좋은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오고 깨끗할 것이다’라는 말을 ‘먼지를 다 털어내면 깨끗게 될 것이다’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좋은 청자의 태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해석의 배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의 전적 타락 교리와 ‘죄인에서 의인으로의 변화’를 강조하는 구속사적 관점, 그리고 근대 이후에 유행한 성장소설(Bildungsroman)의 세계관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 욥 23:10의 올바른, 혹은 보다 나은 번역
새번역은 욥 23:10을 개역개정과는 달리 ‘의로움의 입증을 위한 시험’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이 번역이 바한(בחן)이라는 단어의 의미로 보나 욥 23장의 문맥으로 보나 훨씬 더 적절한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욥 23:10-11을 풀어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나의 지나온 모든 삶을 속속들이 다 아신다네. 그분께서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가 순전한 금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네. 나는 항상 그분이 계신 곳을 따라 발길을 옮겼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그분의 길에 온전히 머물러 있었다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개역개정)
욥기 23장 10절은 욥기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전통적으로는 회개를 통한 정결로, 그리고 현대 기독교의 익숙한 해석틀로는 고난이라는 훈련(연단)을 통한 성장과 깨달음, 혹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은 의미로 ‘소비’됩니다. 진흙에서 무언가를 빚어내는 토기장이의 이미지가 투영되기도 하지요.
“순금 같이 되어”라는 표현은 순금이 아니었다가 시험의 연단을 통해 불순물이 제거되어 순금으로 제련된다는 해석을 반영하고, 또 독자들을 그러한 해석으로 유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만약 ‘부족하고 무지하고 불순한 욥’이 역경과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거쳐 ‘온전한’ 존재로 변하거나 성장하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빌닷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이 사랑받는 이 구절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번역자의 ‘잔재주’ 혹은 '손기술'이 발휘된 번역입니다. 1) ‘시험하다(test)’라는 의미의 바한(בחן)을 “단련”으로 번역한 것과 2) 히브리어 원문에 없는 “(순금 같이) 되어”라는 표현을 삽입함으로써 원문의 의미를 살짝 뒤틉니다.
* 바한(בחן)의 의미
어근 바한(בחן)은 아람어와 아랍어 등에서 ‘시험하다(examine, test)’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무언가를 철저히 조사하고 꼼꼼히 분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레미야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봅시다.
1) ‘꼼꼼히 살피다’
렘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바한 בחן)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20:12 의인을 시험하사(바한 בחן)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위의 구절들에서 ‘시험하다’라는 동사는 ‘심장을 살피다’ 혹은 ‘폐부와 심장을 보다’라는 표현과 평행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다’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어떤 부족하거나 불순한 것을 찾아내 없애서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의인을 시험하사”라는 표현은 ‘죄를 없애서 의인으로 만들다’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바한 בחן)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에서처럼,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서 있음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시험’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분별하여 사실임을 입증하다’
시험의 목적은 어떤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에게 정탐꾼이 아님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에서 바한(בחן)이 사용됩니다. 이 때 개정개역은 바한을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창 42:15)로 번역합니다.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창 42:16)에서처럼, ‘시험’은 사실 입증을 목적으로 합니다. 개역개정은 이러한 의미의 바한을 “분간”(욥 12:11), “분별”(욥 34:3), “조사”(시 95:9)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을 목적어로 하여 사용된 문장들을 보면 ‘불순물을 제거하다’라는 해석이 부적절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의 그 유명한 십일조 구절에서도 바한이 사용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바한)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하나님을 ‘연단’하고 ‘단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를 확인해 보라는 의미가 분명합니다.
* 욥 23장 10절의 문맥 이해
욥 23장 10절의 바한(בחן)은 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욥 자신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욥 23:8-9절),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욥이 살아온 모든 과정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해 보시면, 즉, 철저히 조사하시면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정결한 자라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라는 것이 10절의 뜻입니다. 이어지는 11-12절(“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그분의 명령을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친구들은 몰라도 하나님만큼은 아실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욥의 자기 이해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8; 2:3)와 동일합니다. 만일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의롭다는 망발을 내뱉을 수 있는가!'라고 욥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첫째, 그러한 생각은 바로 욥을 정죄하는 친구들의 생각과 동일하며, 둘째, 욥을 의인으로 규정하신 하나님의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셈이 됩니다.
* 개역개정 번역에 대한 평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는 번역은 ‘고난과 역경을 통한 성장과 깨달음’이라는 해석틀이 투과된 번역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의 스토리’를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에 욥 23:10은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좋은 번역자와 좋은 해석자는 먼저 좋은 청자(good listener)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텍스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들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은 좋은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오고 깨끗할 것이다’라는 말을 ‘먼지를 다 털어내면 깨끗게 될 것이다’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좋은 청자의 태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해석의 배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의 전적 타락 교리와 ‘죄인에서 의인으로의 변화’를 강조하는 구속사적 관점, 그리고 근대 이후에 유행한 성장소설(Bildungsroman)의 세계관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 욥 23:10의 올바른, 혹은 보다 나은 번역
새번역은 욥 23:10을 개역개정과는 달리 ‘의로움의 입증을 위한 시험’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이 번역이 바한(בחן)이라는 단어의 의미로 보나 욥 23장의 문맥으로 보나 훨씬 더 적절한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욥 23:10-11을 풀어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나의 지나온 모든 삶을 속속들이 다 아신다네. 그분께서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가 순전한 금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네. 나는 항상 그분이 계신 곳을 따라 발길을 옮겼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그분의 길에 온전히 머물러 있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