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는 신약성경에만 33번 정도 나오고, 구약 헬라어 성경(LXX)에는 119번 나오는 빈번한 동사이다. 그 뜻은 ‘보여주다’ ‘나타내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히 의미의 변천이 없는 동사라 할 수 있다. 이 동사는 의미의 큰 변화 없이, 단순히 보여주다(show)의 기본적 의미가 문맥에서 전시하다(display), 가리키다(point to), 가르치다(teach), 설명하다(explain), 혹은 드러내다(disclose, reveal)의 뜻으로 확대되었다.
마귀는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 영광을 보여주었다(마 4:8; 눅 4:5). 예수는 로마 동전 데나리온 하나를 보여달라고 하였고(눅 20:240, 자신의 십자가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요 20:20). 이때 사용된 동사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는 물리적 보여줌(show, display)의 일차적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동사가 좀더 추상적인 의미를 가질 때, ‘가르치다’ 혹은 ‘설명하다’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라고 권면하며, 더 큰 은사가 무엇인지를 보여드린다고 말할 때,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 동사를 사용한다. 이 뜻은 가르침 혹은 설명을 의도하고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고백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인자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비로소 나타내셨다(마 16:21). 이 놀라운 메시아의 미래를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나타냄이 아니라, 특별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동사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 보여주다)의 의미가 피상적 보여줌으로부터 경험되기까지의 보여줌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난다. 단순히 말을 통해 가르치는 교훈의 차원이 있다면(고전 12:33; 마 16:21), 보여주어 경험하게 하는 차원이 있다(막 14:45; 딤전 6:15). 하나님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여(딤전 6:15), 하나님의 시간이 된 것을 사람들에게 경험하게 하였다. 보여주어 경험하도록 하고(bring to experience), 무엇인가를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come to pass).
요한의 전승과 관련된 문서는 특별히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를 계시, 묵시의 차원으로 높인다. 표적을 보여주어 메시아인 것을 입증하라는 유대인들의 요구에(요 2:18), 표적보다는 성전의 무너짐을 통해(요 2:19), 혹은 선한 일을 보여줌으로(요 10:32), 예수는 무엇인가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때 사용된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는 하나님께 속한 진리를 드러내는 계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apocalypsis(계시)를 뜻하는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이다.
제자 빌립이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δεῖξον, 데익손)라는 요청에 예수는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본 것인데,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냐’ 라고 대답해 준다(요 14:9).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의 요청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는 ‘계시’를 뜻하는 확대된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런 용례는 요한계시록에까지 이어진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δεῖξαι ,데익사이),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 1:1).
하나님의 종들, 즉 선지자들에게 보이신다는 것은 계시를 전달하였다는 의미이다. 요한계시록은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 보이다)를 계시의 의미로 대부분 사용하였다(계 4:1; 17:1; 21:9, 10; 22:1, 6, 8). 신적인 나타내심과 보여주심을 계시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이미 70인경의 많은 구절(82번)에서 이 단어를 계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창 41:25, 39; 출 33:5, 18; 신 4:5; 5:24;호 5:9; 암 7:1).
‘보여주다’라는 동사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가 뜻의 큰 변천은 없지만, 문맥을 따라, 보여줌, 가르침, 경험되게 함, 드디어 계시함의 뜻으로 뜻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과 보여줌, 가르치며 경험되게 함,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의 역사를 이 단어에서 보여주고 있다. 믿음의 역사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만들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보이고 나타난 것을 경시하거나 무시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은혜의 믿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는 신약성경에만 33번 정도 나오고, 구약 헬라어 성경(LXX)에는 119번 나오는 빈번한 동사이다. 그 뜻은 ‘보여주다’ ‘나타내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히 의미의 변천이 없는 동사라 할 수 있다. 이 동사는 의미의 큰 변화 없이, 단순히 보여주다(show)의 기본적 의미가 문맥에서 전시하다(display), 가리키다(point to), 가르치다(teach), 설명하다(explain), 혹은 드러내다(disclose, reveal)의 뜻으로 확대되었다.
마귀는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 영광을 보여주었다(마 4:8; 눅 4:5). 예수는 로마 동전 데나리온 하나를 보여달라고 하였고(눅 20:240, 자신의 십자가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요 20:20). 이때 사용된 동사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는 물리적 보여줌(show, display)의 일차적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동사가 좀더 추상적인 의미를 가질 때, ‘가르치다’ 혹은 ‘설명하다’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라고 권면하며, 더 큰 은사가 무엇인지를 보여드린다고 말할 때,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 동사를 사용한다. 이 뜻은 가르침 혹은 설명을 의도하고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고백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인자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비로소 나타내셨다(마 16:21). 이 놀라운 메시아의 미래를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나타냄이 아니라, 특별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동사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 보여주다)의 의미가 피상적 보여줌으로부터 경험되기까지의 보여줌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난다. 단순히 말을 통해 가르치는 교훈의 차원이 있다면(고전 12:33; 마 16:21), 보여주어 경험하게 하는 차원이 있다(막 14:45; 딤전 6:15). 하나님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여(딤전 6:15), 하나님의 시간이 된 것을 사람들에게 경험하게 하였다. 보여주어 경험하도록 하고(bring to experience), 무엇인가를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come to pass).
요한의 전승과 관련된 문서는 특별히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를 계시, 묵시의 차원으로 높인다. 표적을 보여주어 메시아인 것을 입증하라는 유대인들의 요구에(요 2:18), 표적보다는 성전의 무너짐을 통해(요 2:19), 혹은 선한 일을 보여줌으로(요 10:32), 예수는 무엇인가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때 사용된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는 하나님께 속한 진리를 드러내는 계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apocalypsis(계시)를 뜻하는 δείκνυμι (데이크누미)이다.
제자 빌립이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δεῖξον, 데익손)라는 요청에 예수는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본 것인데,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냐’ 라고 대답해 준다(요 14:9).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의 요청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는 ‘계시’를 뜻하는 확대된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런 용례는 요한계시록에까지 이어진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δεῖξαι ,데익사이),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 1:1).
하나님의 종들, 즉 선지자들에게 보이신다는 것은 계시를 전달하였다는 의미이다. 요한계시록은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 보이다)를 계시의 의미로 대부분 사용하였다(계 4:1; 17:1; 21:9, 10; 22:1, 6, 8). 신적인 나타내심과 보여주심을 계시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이미 70인경의 많은 구절(82번)에서 이 단어를 계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창 41:25, 39; 출 33:5, 18; 신 4:5; 5:24;호 5:9; 암 7:1).
‘보여주다’라는 동사 δείκνυμι(데이크누미)가 뜻의 큰 변천은 없지만, 문맥을 따라, 보여줌, 가르침, 경험되게 함, 드디어 계시함의 뜻으로 뜻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과 보여줌, 가르치며 경험되게 함,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의 역사를 이 단어에서 보여주고 있다. 믿음의 역사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만들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보이고 나타난 것을 경시하거나 무시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은혜의 믿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