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τάσσω (타쏘)는 신약성경에서 8번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5번은 누가복음-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다(눅 7:8; 행 13:48; 15:2; 22:10’ 28:23). 이 단어는 지정하다(appoint), 결정하다(determine), 바치다(devote)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τάσσω (타쏘)는 시간이나 장소를 지정하거나 지시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행 28:16, 23).
더 나아가서 이 단어는 어떤 권위나 권세로 특별히 누군가에게 지위와 직무를 맡긴다, 지정하다(appoint, entrust)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권위의 차원에서 명령(order)과 순종의 상하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종의 병을 낫기를 구하는 로마의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주님이 가시는 것을 감히 요청하지 않는 것은 권위(ἐξουσία엑수시아) 아래 있는 자신처럼 자신의 권위 아래에 부하에게 명령하면(τάσσω) 그대로 복종하여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눅 7:8). 정치적 법률적 지위와 권세를 부과하는 ‘위임하다’의 뜻으로 세속적 용례로 사용된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용례에서도 보이는데, 이방인 크리스천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할례파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주장으로 인해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이방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대표자로 지정하여(τάσσω, 타쏘)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파송하였다. 여기에 파송의 주체는 안디옥 교회이고, 교회가 두 이방인 사도 위에 권위를 가진 주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법과 명령으로 사도들에게 지위를 부과하여 논쟁을 해결하도록 정치적 법률적 위임을 한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세상 권세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상 권세 자체가 더 큰 하나님의 권세로 권위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로마서 13장에서 분명히 선포되고 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ἐξουσία)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τάσσω) 바라”(13:1).
권세(ἐξουσία엑수시아)는 하나님이 정하신(instituted) 것이라는 바울의 논조에 사용되는 단어는 τάσσω(타쏘)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법에서 세상 권세가 지정된(appointmented) 것임을 알리고 있다. 정치적 법률적 차원의 동사 τάσσω (타쏘)가 이제 종교적 신학적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발전은 더욱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으로 발전하는데,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 유대인은 거부하였지만 이방인 개종자들은 복음을 환영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사실을 하나님의 택하심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있음을 언급한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성하며, 영생을 두시기로 작정된(테타그메노이 τεταγμένοι)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작정되었다라는 τάσσω (타쏘) 동사의 완료형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사도행전 저자가 알리고 있고, 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사건은 사도 바울이 이방선교로 나아가려는 선교방향의 확실한 전화점이었다. «작정되었다, 지정되었다»라는 의미의 τάσσω (타쏘)는 사도행전 저자의 신학이 담긴 특별한 단어라 할 수 있다.
τάσσω(타쏘)는 일반 세속적 용법에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약속의 의미로 ‘지정하다’의 차원에서 정치적 법률적 지위로 권위를 위임하는 의미로 발전하였고, 드디어는 신약성경의 용례처럼 종교적 신학적 의미로서 위임과 소명의 뜻을 부과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을 말하는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권위와 계획 속에 우리의 삶이 복된 인생으로 작정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작은 단어 하나가 가진 의미를 되새기며 그리스도인의 작정된 삶을 운명주의에 맡기지 않으면서, 맡겨지고 위임된 소명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동사 τάσσω (타쏘)는 신약성경에서 8번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5번은 누가복음-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다(눅 7:8; 행 13:48; 15:2; 22:10’ 28:23). 이 단어는 지정하다(appoint), 결정하다(determine), 바치다(devote)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τάσσω (타쏘)는 시간이나 장소를 지정하거나 지시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행 28:16, 23).
더 나아가서 이 단어는 어떤 권위나 권세로 특별히 누군가에게 지위와 직무를 맡긴다, 지정하다(appoint, entrust)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권위의 차원에서 명령(order)과 순종의 상하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종의 병을 낫기를 구하는 로마의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주님이 가시는 것을 감히 요청하지 않는 것은 권위(ἐξουσία엑수시아) 아래 있는 자신처럼 자신의 권위 아래에 부하에게 명령하면(τάσσω) 그대로 복종하여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눅 7:8). 정치적 법률적 지위와 권세를 부과하는 ‘위임하다’의 뜻으로 세속적 용례로 사용된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용례에서도 보이는데, 이방인 크리스천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할례파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주장으로 인해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이방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대표자로 지정하여(τάσσω, 타쏘)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파송하였다. 여기에 파송의 주체는 안디옥 교회이고, 교회가 두 이방인 사도 위에 권위를 가진 주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법과 명령으로 사도들에게 지위를 부과하여 논쟁을 해결하도록 정치적 법률적 위임을 한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세상 권세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상 권세 자체가 더 큰 하나님의 권세로 권위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로마서 13장에서 분명히 선포되고 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ἐξουσία)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τάσσω) 바라”(13:1).
권세(ἐξουσία엑수시아)는 하나님이 정하신(instituted) 것이라는 바울의 논조에 사용되는 단어는 τάσσω(타쏘)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법에서 세상 권세가 지정된(appointmented) 것임을 알리고 있다. 정치적 법률적 차원의 동사 τάσσω (타쏘)가 이제 종교적 신학적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발전은 더욱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으로 발전하는데,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 유대인은 거부하였지만 이방인 개종자들은 복음을 환영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사실을 하나님의 택하심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있음을 언급한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성하며, 영생을 두시기로 작정된(테타그메노이 τεταγμένοι)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작정되었다라는 τάσσω (타쏘) 동사의 완료형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사도행전 저자가 알리고 있고, 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사건은 사도 바울이 이방선교로 나아가려는 선교방향의 확실한 전화점이었다. «작정되었다, 지정되었다»라는 의미의 τάσσω (타쏘)는 사도행전 저자의 신학이 담긴 특별한 단어라 할 수 있다.
τάσσω(타쏘)는 일반 세속적 용법에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약속의 의미로 ‘지정하다’의 차원에서 정치적 법률적 지위로 권위를 위임하는 의미로 발전하였고, 드디어는 신약성경의 용례처럼 종교적 신학적 의미로서 위임과 소명의 뜻을 부과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을 말하는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권위와 계획 속에 우리의 삶이 복된 인생으로 작정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작은 단어 하나가 가진 의미를 되새기며 그리스도인의 작정된 삶을 운명주의에 맡기지 않으면서, 맡겨지고 위임된 소명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