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에 나타난 πληρόω 플레로 (이루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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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어떤 신약성경의 책보다도, 하나님의 구원사(salvation history)를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 신학자 콘젤만 Conzelmann 은, 누가의 구원사가 이스라엘 시대, 예수의 시대, 그리고 교회의 시대로 발전해 간 것에 주목하였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물론 누가의 책에만 보이는 독특한 신학적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누가가 사용하는 특별한 단어들은 그레코로만적인 관점에서 마치 영웅들(예수, 교회, 사도들)의 운명(fortuna, tyche, moira)을 보여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사 πληρόω(플레로)는 능동형으로 ‘이루다,’ 수동형은 ‘이루어지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약속의 성취"를 뜻하는 대표적인 단어이다(눅 1:20; 4:21;9:31, 21:24, 24:44). 세례요한의 탄생, 메시아의 성령사역과 죽음,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모든 예언의 성취가 예수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누가는 동사 πληρόω(플레로)를 사용하였다.
누가복음 1:1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πεπληροφορημένων 페플레로포레메논) 사실에 대하여"라고 시작하며, 예수의 이야기(διήγησις 디에게시스)를 누가 자신도 하려 한다고 시작한다. 누가복음의 서문 첫 구절은, 예수의 사역에서 보이는 약속의 성취라는 의미로 πληροφορέω(이루어지다)의 완료동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땅으로 올라가는 예수의 운명적인 발걸음을 ‘기약이 차가매’(συμπληροῦσθαι 쉼플레루스타이)라고 말하며 이 단어의 합성어를 사용하고 있다(9:51). 누가는 예수라는 존재의 사역과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하나님의 섭리(βουλή 불레, 눅 7:30, 행 2:23, 4:28), 혹은 하나님의 뜻(θέλημα 텔레마, 눅 22:42; 행 21:14, 22:14)으로 강조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강조하는 ‘정해지다’(ὁρίζω 오리조)의 단어가 또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눅 22:22; 행 2:23; 10: 42; 11:29; 17:26, 31).
누가는 예수의 사역과 고난, 죽음, 그리고 교회의 시대에 이루어지는 복음전파의 역사를 세상의 향한 하나님의 정해진 구원사라 보고 있다. 그레코로만 시대의 많은 신화나 이 사회가 강조한 덕목은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운명(moira)이라는 세 여신의 베틀이 짜는 대로, 신도 영웅도 인간도 순종해야 함을 가르치는 시대였다. 누가는 이런 신화적인 운명론을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 운명을 주관하는 자들(stoicheia, 갈 4:3, 9; 골 2:8, 29)에게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에 맡기고, 그 뜻에 순명하는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인들이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πληρόω 플레로 (이루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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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어떤 신약성경의 책보다도, 하나님의 구원사(salvation history)를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 신학자 콘젤만 Conzelmann 은, 누가의 구원사가 이스라엘 시대, 예수의 시대, 그리고 교회의 시대로 발전해 간 것에 주목하였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물론 누가의 책에만 보이는 독특한 신학적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누가가 사용하는 특별한 단어들은 그레코로만적인 관점에서 마치 영웅들(예수, 교회, 사도들)의 운명(fortuna, tyche, moira)을 보여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사 πληρόω(플레로)는 능동형으로 ‘이루다,’ 수동형은 ‘이루어지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약속의 성취"를 뜻하는 대표적인 단어이다(눅 1:20; 4:21;9:31, 21:24, 24:44). 세례요한의 탄생, 메시아의 성령사역과 죽음,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모든 예언의 성취가 예수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누가는 동사 πληρόω(플레로)를 사용하였다.
누가복음 1:1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πεπληροφορημένων 페플레로포레메논) 사실에 대하여"라고 시작하며, 예수의 이야기(διήγησις 디에게시스)를 누가 자신도 하려 한다고 시작한다. 누가복음의 서문 첫 구절은, 예수의 사역에서 보이는 약속의 성취라는 의미로 πληροφορέω(이루어지다)의 완료동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땅으로 올라가는 예수의 운명적인 발걸음을 ‘기약이 차가매’(συμπληροῦσθαι 쉼플레루스타이)라고 말하며 이 단어의 합성어를 사용하고 있다(9:51). 누가는 예수라는 존재의 사역과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하나님의 섭리(βουλή 불레, 눅 7:30, 행 2:23, 4:28), 혹은 하나님의 뜻(θέλημα 텔레마, 눅 22:42; 행 21:14, 22:14)으로 강조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강조하는 ‘정해지다’(ὁρίζω 오리조)의 단어가 또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눅 22:22; 행 2:23; 10: 42; 11:29; 17:26, 31).
누가는 예수의 사역과 고난, 죽음, 그리고 교회의 시대에 이루어지는 복음전파의 역사를 세상의 향한 하나님의 정해진 구원사라 보고 있다. 그레코로만 시대의 많은 신화나 이 사회가 강조한 덕목은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운명(moira)이라는 세 여신의 베틀이 짜는 대로, 신도 영웅도 인간도 순종해야 함을 가르치는 시대였다. 누가는 이런 신화적인 운명론을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 운명을 주관하는 자들(stoicheia, 갈 4:3, 9; 골 2:8, 29)에게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에 맡기고, 그 뜻에 순명하는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