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정의와 공의

관리자
2016-09-13
조회수 10308

한글역본 성경들에 ‘정의’(正義)와 ‘공의’(公義)란 용어가 자주 나온다. 이 두 단어가 한 문장 안에 함께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약 48회). 이 두 용어의 개념이 모호해서 한글역본들에서 서로 엇갈리게 번역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아모스서 5장 24절을 들 수 있다.


<개역개정, 오직 정의 를 물 같이, 공의 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새번역, 너희는 다만 공의 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 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이 구절에서 ‘정의’와 ‘공의’가 개역과 새번역에서 서로 엇갈리게 번역되어 있다. 개역은 <미쉬파트>מִשְׁפָּט 를 ‘정의’ 라고 번역했고 <처다카> צְדָקָה 를 ‘공의’ 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그 반대로 번역했다. 창세기 18장 19절은 매우 다르게 옮겼다.


<개역개정, 공의 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새번역,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새번역은 이 두 용어들을 풀어서 의역하였다. 개역개정역에서 ‘정의’ 란 단어는 오경에서 다섯 차례 언급되며(창18:25; 출23:6; 신10:18; 32:4, 41). 새번역 오경에는 ‘공의’ 란 역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정의’ 란 역어는 다섯 차례 사용했다(창18:25; 출23:6; 신10:18; 32:4, 41). 이 두 단어는 우리말 성경에서 일관된 용어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 번역이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게 나온다. 독자들은 종잡을 수가 없다. 더구나 한글 사전을 보아도 이 두 단어의 뜻을 서로 구별하기 어렵다. ‘정의’(正義)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되어 있고 ‘공의’(公義)란 ‘공평한 도리’ 라고 되어 있다. 이에 히브리어 원어를 찾아보자.


‘의’ 또는 ‘공의’ 라고 번역되고 있는 <처다카>는 여성명사이고 남성으로는 <체데크>이다. 이 명사는 본디 나무 막대기를 가리켰다. 길고 짧은 것을 재어볼 때 막대기를 도구로 사용하다 보니 <처다카>는 ‘자’(尺)가 되었다. 더 나아가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판단을 할 때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규범을 가리키는 용어로 발전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은 행동할 때 판단의 기준이 되는 척도가 곧 <처다카/체데크>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의인’ 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썼던 사람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다(창6:9). 아브라함이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더니 주께서 그를 ‘의롭다’ 고 인정하셨다(창15:6).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법적인 정의(justice)는 <처다카>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서방의 많은 성경학자들은 <처다카>를 righteousness 내지는 Rechtigkeit라고 번역한다.


사법적인 정의는 <미쉬파트>의 개념에 가깝다. <미쉬파트>는 ‘재판하다’ 란 동사 <샤파트>의 명사형이므로 법정의 소송에서 사용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는 대개 justice, ordinance, judgment 라고 옮긴다. 우리말 역본들에는 ‘정의’, ‘율례’, ‘법규’, 등으로 번역했다. 고대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성문법 제도가 없었다. 지역사회에서 오래 전수되어오던 관습법을 중심으로 재판하였다. 관습법을 표현하는 <미쉬파트>란 용어가 성경에 채용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표현하였다. 시내산에서 선포된 <미쉬파트>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계약법이다. <후크>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 <호크 우미쉬파트>란 상투어가 구성되었는데 ‘계약법’ 을 칭하는 표제가 되었다. <후크>는 대개 ‘규례’ 라고 번역된다. <미쉬파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관습법이다.


정리하자면, <미쉬파트>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준행하며 살려고 모인 말씀공동체의 관습법이고, <차디크>는 모든 생활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려고 애쓰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미쉬파트>는 <차디크> 없이는 실천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미쉬파트>와 <처다카>는 사람 사이의 윤리 도덕을 규정하는 세상의 법률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엮어진 인간의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규범에 관련된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 <미쉬파트>는 용서와 사랑이다.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미쉬파트> 와 공의 <처타카> 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겔33:19)


이렇게 이해할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정확하게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말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 <체데크>로 인하여 성취된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로 현존하고 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 <체데크> 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 <미쉬파트> 로 다스릴 것이며"(사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