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στενάζω(스테나조, 탄식하다)에 대하여

김범식
2023-09-02
조회수 1205

헬라어 동사 στενάζω(스테나조)는 신약성경에 여섯 번 나타난다. 그 중에 세 번은 바울의 서신에 나타나고 있다(롬 8:23; 고후 5:2, 4). 이 단어는 '탄식하다'(groan), '한숨 쉬다'(sigh)의 뜻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뜻으로는 ‘원망하다’(complain)의의미로 사용되었다(약 5:9). 이 동사의 명사형은 στεναγμός(스테나그모스)로서, 신약성경에 두 번 나타난다(행 7:34; 롬 8:26). 구약의 70인경에는 다양한 히브리어 동사들이 στενάζω(스테나조)로 번역되어 약 30번 정도 나타나고 있는데, 인간의 탄식과 고통의 목소리를 나타내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사도행전 7:34은 스데반의 연설에서 모세의 소명을 인용하면서, 애굽 사람의 손에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하는 소리로 στεναγμός(스테나그모스)라고 표현하고 있다(출 2:24; 참조 3:9).


고전 헬라어에서 동사 στενάζω(스테나조)는 특별히 비극 드라마에서 종종 인간의 운명과 신세를 한탄하는 곳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원망과 비탄이 담긴 고통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단어라 할 수 있다. 해산하는 여인의 신음소리(렘 4:31), 죽어가는 자의 신음소리(겔 26:15), 불행 당한 사람의 탄식(욥 23:2; 시 6:6),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행하게 된 인간의 탄식(사 24:7) 등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이런 인간의 탄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을 선지자는 기대하고 있다.


헬레니스트 유대인 Philo는 영혼이 육신에 갇혀 지배당하며 고통 당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의 억압 아래에서 고통당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육신(Body)은 영혼(Soul)을 가두는 무덤 혹은 감옥이라는 헬레니즘적인 인간이해는 바울이 쓴 로마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수스테나조 συστενάζω),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στενάζω),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22-23).


바울의 헬라적 세계관을 보여주는데, 물질세계(Cosmos)의 모든 피조물은 쇠락하고 변질되기에 허무한 데 굴복한다고 말한다. 피조물이 더 이상 썩어짐에 종노릇 하지 않고 비물질적 영원한 이데아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영광의 자유’를 위해 인간들과 함께 탄식(groan)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육체에 갇힌 영혼(psyche)이기에 몸(소마 σῶμα)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탄식한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자 플라톤(Plato)은 인간의 구원은 갇힌 몸으로부터 영혼의 해방이라고 말하지만, 바울은 기독교적 구원론을 “몸의 속량”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위해 인간 영혼이 탄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헬라적 세계관과 인간관을 공유하면서도 영혼의 자유만을 말하지 않고 ‘몸의 구속’을 말한다. 썩어질 몸조차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구속(아포루트로시스ἀπολύτρωσις) 받게 되기를 기대하는 영혼의 탄식이 인간에게 있다고 말한다.


영혼의 탄식과 함께 하는 피조물의 탄식,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영의 탄식을 놀랍게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스테나그모스στεναγμός)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7).


성령의 탄식은 성도의 기도생활을 돕는 탄식이라고 말한다. 인간 영혼의 탄식 가운데, 이 기도를 돕는 것이 성령의 탄식이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며, 구원의 열매가 우리에게 시작되었다(첫 열매)고 말한다(롬 8:23). 바울은 영혼의 탄식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결과로서 죽음의 장막집(육체)을 벗고, 하늘의 처소를 덧입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고후 5:2). 바울은 물질세계와 영원한 세계를 잇는 피조물의 탄식(스테나그모스στεναγμός), 몸과 영혼을 이어가는 인간의 탄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어가는 성령의 탄식을 그의 구원론에서 보여주고 있다.


탄식은 불행과 고통의 소리이겠지만, 동시에 이 탄식은 기도하는 영혼의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세상의 불의와 인간의 불행을 보며 탄식하는 우리의 기도는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주님은 믿음 없는 패역한 세대에 기도 외에 답이 없다고 하였다. 세상과 인생을 위한 우리의 거룩한 탄식이 늘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