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κατηχέω(카테케오, 가르치다)에 대하여

김범식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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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동사 κατηχέω (카테케오)는 신약성경에만 단 8번 나오는 특별한 동사이다. 일반적인 의미로서 ‘알려주다’(inform), ‘전해주다’(report)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특별한 의미를 가지면서 ‘가르치다’(teach)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동사가 구약 70인경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신약성경의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가르침을 암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르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헬라어 동사는 διδάσκω(디다스코)로서 신구약 성경 전반에 사용되고 있다(신 4:1; 시 17:35; 잠 1:23; 마 4:23; 눅 4:15; 요 7:14; 행 1:1; 갈 1:12; 엡 4:21). 하지만 κατηχέω (카테케오)는 신약성경에만 사용되고, 그것도 바울 저작의 서신들에만 4번 사용되었고(롬 2:18; 고전 14:19; 갈 6:6), 누가복음-사도행전에 4번 사용되었다(눅 1:4; 행 18:25; 21:21, 24). 사도행전 21:21은 κατηχέω(카테케오)와 διδάσκω(디다스코)와 함께 사용되었다. 종교적 의미 없이 일반적 뜻으로 κατηχέω(카테케오)가 사용되었고, 기독교적 가르침과 상관없이 ‘가르치다’의 의미로 διδάσκω(디다스코)가 사용되었다: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가르치되(διδάσκεις),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κατηχήθησαν)(행 21:21).


바울이 선교여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와 장로들은 그의 신변을 염려하였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율법을 부정하는 가르침이라고 오해하며 듣게 되었으니(informed), 그 들은 것(κατήχηνται, 행 21:24)이 오해인 것을 풀어주도록 바울에게 권면하였다. 여기서 동사 κατηχέω(카테케오)는 ‘알려주다’의 의미로 세속적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다른 모든 곳에서 κατηχέω(카테케오)는 기독교적 가르침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특별히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저자는 수신자 데오빌로에게 기록의 목적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미 각하가 알고 있는 바(κατηχήθης, 카테케데스)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다(눅 1:4).


수신자 데오빌로가 소문처럼 복음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어서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려고 복음서를 기록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기독교인이 되는 교리적 가르침을 받은 데오빌로에게 더 확실한 기독교인이 되도록 기록을 하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κατηχέω(카테케오)를 듣게 되다(reported)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복음전파의 목적이 있는 경우가 되고, 이 동사를 종교적 가르침이 담긴 의미로 사용하였다면, 데오빌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지만 더욱 복음의 확실한 역사를 알도록 하는 양육의 목적이 있는 후자의 경우가 된다. 저자 누가는 κατηχέω (카테케오)를 종교적 가르침의 의미로 서문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18장에서 ‘아볼로’라는 일꾼의 사역을 말하면서, 비록 그가 세례요한의 물세례만 알고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주의 도를 배웠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κατηχέω(카테케오)가 완료수동분사형으로 사용된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κατηχημένος, 카테케메노스)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 18:25, 새번역)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저자는 κατηχέω(카테케오)를 사용할 때, 특정 개인에 대해서 양육의 목적을 가진 교리적 가르침(instruction)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세례를 위한 교리적 문답적 가르침을 catechism이라 부른다. 구약의 70인경이나 헬레니스트적 유대교 문서에서 ‘가르침’의 문맥에서 κατηχέω(카테케오)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 단어는 지극히 기독교적 용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바울의 편지에서 교회에서의 양육적 가르침이나, 사도적 복음적 가르침의 의미로 κατηχέω (카테케오)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κατηχήσω)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가르침을 받는 자(κατηχούμενος, 카테쿠메노스)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κατηχοῦντι, 카테쿤티)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성숙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분명한 양육과 교육을 위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일만 마디의 방언이나 헛된 외침보다는 다섯 마디의 분명하면서도 깨닫게 된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도적이고 보편적이고 역사적이고 영적이고 복음적인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소문처럼 들리는 이야기도 아니고, 개인의 신비적이고 무분별한 사적 가르침도 아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