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κρύπτω(크룹토, 감추다)에 대하여

김범식
2024-09-13
조회수 1054

신약성경에 나오는 동사 κρύπτω(크룹토)는 18번 정도 사용되었다. 그 뜻은 ‘감추다’(conceal), ‘묻어두다’(bury), ‘비밀스럽게 하다’(keep secret)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가 ἀποκαλύπτω(아포칼룹토, reveal)이다. 고전 헬라어 용법에서 κρύπτω(크룹토)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다. 문제나 죄를 눈감아 주거나(overlook), 넘어가 주다(let it go)의 의미로 사용하여 용서의 덕을 베푸는 긍정의 말이기도 하지만, 이기적이고 탐욕적 목적으로 감추는 비열한 도적행위(steal)로서 부정적 말로도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비유에서, 밭에서 발견된 보화를 얻기 위해서 그것을 감추는 행위로 사용되기도 하지만(마 13:44), 주인이 종에게 그의 달란트를 맡겼는데, 그것을 밭에 묻어버리는 부정적 의미로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마 25:18, 25).


단순 동사 κρύπτω(크룹토)의 동의어로서 복합동사 ἀπο-κρύπτω(아포크룹토, 숨기다)가 신약성경에 함께 사용되었다(눅 10:21; 고전 2:7; 엡 3:9; 골 1:26). κρύπτω(크룹토)는 고전 헬라어에서 종교적 신학적 의미를 가진 용어였다. 신의 존재는 사람들의 눈에 숨겨진(hidden) 존재이고, 신의 뜻이나 계획은 불가해적이며, 초월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신성하고도(sacred) 신비로운(numinous) 존재로서 인간에게 감추어진(κρυπτός크룹토스, hidden) 것이다. 신의 영역은 비밀스럽고 신성한 것이기에, 신이 원하여 선택하기 전에는 신의 뜻이나 존재는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신들조차 운명(moira, fate)의 힘에 굴복되기에, 미지의 영역은 신들과 인간에게 똑같이 존재하고 있다. 제우스의 손에 쥐어진 황금저울의 향방은 제우스의 의지와 지식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기에, 세상에 비밀스러움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비밀스러움을 나타내는 동사가 κρύπτω(크룹토)이다. 하지만 유대교의 구약성경이나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하나님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움은 없다. 오히려 그것은 비밀(secret)이 아니라, 결국 드러나는 신비(mystery)가 된다.


예수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이라 할 수 있는 율법선생과 바리새인들을 염두에 두며 이런 말을 하였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κρύπτω, 크룹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ἀποκαλύπτω, 아포칼룹토)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

 

구약성경과 신구약 중간시대에 나타나는 영지주의나 신플라톤주의는 신의 영역이 접근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숨겨지지만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지식과 지혜를 통하여 경험할 수 있는 신적 존재와 지혜를 영지주의자들이나 유대교 지도자들이 추구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그 숨겨진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지혜자와 선생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계속적으로 숨겨져 있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가르침을 통해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들에게 드러내신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비밀스러움을 말하면서도, 항상 숨겨진 하나님이 더 이상 아닌 것은 예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비밀스러움을 드디어 드러내는 계시 자체임을 선포한다.

 

마태복음에서 동사 κρύπτω(크룹토)가 7번 사용되고, 형용사 κρυπτός(크룹토스, 비밀스러운)이 5번 사용된 것을 보면(마 6:4, 6; 10:26),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이 복음서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역사가 믿음의 공동체에게 분명히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은밀한 구제, 은밀한 기도를 보시는 하나님은 은밀하시지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자신은 비밀스러운 존재이지만, 그분의 역사는 모든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하나님이심을 동시에 선포하고 있다(마 10:26). 마태복음의 하나님처럼, 요한복음에 보이는 예수의 존재도 은밀하지만(요 7:4, 10), 동시에 자신을 분명히 세상에 드러내시는 분이다(요 18:20). 세상의 빛으로, 등경 위에 비치는 등불같은 예수님의 존재이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소금처럼 은밀하게 맛을 내지만, 또한 빛으로 감출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하나님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이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숨겨지지 않는 존재로 세상에 그 존재를 계시하는 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뜻과 계획을 파악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비밀은 그 분 앞에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겸손히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