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κόπος (코포스, 수고)에 대하여

김범식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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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진보를 위한 수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의미의 ‘일’을 하기에 특별히 바울이 사용하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수고’라는 단어인데, 헬라어 명사로서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κόπος(코포스)이다. 신약성경에 18번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바울서신에 11번 사용되었다. 바울은 사도로서, 그리스도인, 혹은 교회로서 복음을 위하여 어렵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수고의 의미로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원래 이 단어는 세속적 헬라어에서 동사 κόπτω(코프토, 치다)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비통하여 가슴을 치다라는 애통의 상태로 피곤함과 지침의 상태(tiring)를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는 κόπος(코포스)는 두 가지의 뜻으로 주로 사용되었는데, ‘괴롭힘’(trouble, bother)의 뜻으로 사용되었고(막 14:6; 눅 11:7; 고후 11:23; 갈 6:17), 또한  ‘수고’(labor, toil)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고전 3:8; 15:58; 고후 10:15; 11:27; 살전 1:3; 살후 3:8; 계 2:2; 14:13). 수고의 뜻으로 사용된 동의어로서 πόνος(포노스)가 있는데, 이것은 육체적 힘든 노동을 가리키는 말이다(골 4:13; 계 16:10; 21:4). 또한 애쓰고 수고하는 것을 뜻하는 μόχθος(모크소스)가 있다. 이 단어는 πόνος(포노스)와 함께 사용되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과 역경의 삶을 표현할 때 사용하였다(고후 11:27; 살전 2:9; 살후 3:8) .

헬라어 구약성경에서 κόπος(코포스)는 대체로 고통, 혹은 재앙의 뜻으로 사용되는 히브리어 עָמָל(아말)의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가 πόνος(포노스)와 함께 사용된 경우들이 있는 것을 보면(렘 20:28; 합 1:3), 바울의 고난의 영성은 이미 구약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곤고하고 괴로운 일을 보는 의인의 고통, 복음전파를 위하여 희생하고 수고하는 사역은 고난의 영성으로 일맥상통하고 있다. 인생이 수고(עָמָל)하지만 얻게 되는 결과가 허무한 것을 노래하는 전도서에는 ‘수고’라는 μόχθος(모크소스)로 가득 차 있다(전 1:3; 2:10, 11, 18, 19, 20, 22, 24: 3:13; 4:8, 9; 5:14, 17, 18; 8:15; 9:9). 단어 ‘수고’는 결국 고난을 담은 영성의 삶이다. 욥의 고난이 시험당하는 고난이지만, 고난 자체가 인간의 삶에 본질적으로 부여된 애환과 같은 것이다:

“인간이 고난(코포스 κόπος )을 타고 태어나는 것은 불티가 위로 날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새번역, 욥 5:7).


고난을 겪으며 수고하는 인생에 대한 성찰을 통해 지혜문학이나 시편의 저자는 의인의 고난과 수고가 헛되기보다 오히려 참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삶을 κόπος(코포스)로 바울이 표현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영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바울은 사도들과 교회, 교인들의 삶에서 이 영성의 삶을 받아들이도록 권고한다: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코포스 κόπο)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새번역, 고전 3: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전 15:58)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이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κόπος(코포스)의 의미는 고통과 노력, 인내와 열매를 내포하는 말이다. 바울이 특별히 이 단어를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사도적 삶, 그리고 교회가 행하는 사랑의 수고, 종말론적 삶을 사는 교인들의 인내의 수고를 기대하며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수고의 영성은 구약성경이 이해하는 의인의 고난의 영성을 이어받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수고가 욕심을 이루는 헛된 수고가 아니라, 주 안에서 행하여  헛되지 않은 수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