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그리스도인"에 대한 묵상(우진성)

관리자
202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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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 혹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체성이다. "그리스도인"은 믿는 자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는 지칭이자 호칭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지향이다. "그리스도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Χριστιανός(크리스티아노스)이다. 사도행전은 이 호칭이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증언한다. 사도행전 11장에 있는 말씀인데,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장면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사도행전 11:19-26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를 전하였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 . . .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중략된 부분이 있지만, 위의 서술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그리스 말을 하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다는 점, 그들이 안디옥 교회를 이루었다는 점, 바나바와 바울이 그들을 목회했다는 점, 그렇게 모인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는 점(26절)을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사용되기 전에, 이들은 스스로를 “제자”(6:1), “성도”(9:13), “형제자매”(1:16; 9:30), “신자”(10:45), “구원 받은 사람”(3:47), “도를 따르는 사람”(9:2) 등으로 불렀는데, 안디옥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Χριστιανός(크리스티아누스)에 대한 논의 중에 다음은 주목할 만 하다. 먼저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는 26절 증언에서 수동 동사가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스스로 그렇게 부른 "지칭"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호칭"이었다. 바깥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먼저 부르기 시작했다면, 무슨 의미를 담아 그렇게 부른 것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Χριστιανός(크리스티아누스)라는 단어의 구조에 살짝 살필 필요가 있다. Χριστιανός = Χριστ + ιανός의 형태이다. 앞 부분은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이고, 뒷 부분 어미 ιανός(이아노스)는 라틴 어미 ianus(이아누스)에서 온 것인데, 그 뜻은 "~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라틴 표현인 Brutianus(브루티아누스)와 Augustianus(아우구스티아누스)를 들어보자. 이 두 단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 로마의 권력을 두고 부딪힌 두 파당을 부르는 언어였다. 카이사르의 암살을 주도한 브루투스의 편에 선 사람들을 그의 이름 뒤에 ianus(이아누스) 어미를 붙여 Brutianus(브루티아누스)라고 불렀고, 카이사르를 계승하려 한 아우구스투스 편에 선 사람들을 그의 이름 뒤에 마찬가지 어미를 붙여 Augustianus(아우구스티아누스)라고 불렀다. 이때 사용된 ianus(이아누스) 어미의 그리스어 버전이 Χριστιανός(크리스티아노스)에 사용된 것은 이 단어의 의미를 드러내 준다. 브루투스를 따른 사람이나, 아우구스투스의 파당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혹은 "그리스도 파당"이라는 의미를 크리스티아노스가 담고 있다. 주의할 점은 이 단어에는 오늘날의 교회가 가르치는 것과 같은 신학적 의미의 "제자도"의 의미는 담겨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생소한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다소 거친 의미의 호칭으로 보는 것이 좋다. 주류 사회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은 상종하지 않는 것이 오랫동안 지속된 삶의 양식이었다. 그것을 정면으로 어기며 함께 모이고 먹고 마셔, 세상이 당혹감을 던져준 집단에게 붙여진 다소 비하적인 의미의 이름이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스)가 부정적 의미를 담고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두 가지가 간접적 증거인데, 첫째는 이 단어가 성경에 놀랍도록 낮은 빈도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이어 사도행전 26장 28절에 다시 등장하고, 그 외에 용례는 베드로전서 4장 16절이 전부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그리스도인들이 듣기 좋은 호칭이었다면, 그래서 일찍부터 기꺼이 그들 자신의 정체성 언어로 받아들였다면, 성경에 이렇게 적게 등장할 수 있을까? 신약의 저자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기를 주저하였다. 

가장 큰 거부감은 바울 사도에게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틀어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스)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안디옥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면, 그곳에서 목회한 바울 사도는 분명 이 단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예수 믿는 사람의 정체성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하였다. 대표적인 예 두 가지를 들자면 "그리스도 안"ἐν Χριστῷ(엔 크리스토)라는 표현이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사용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ἄνθρωπον ἐν Χριστῷ(안드로폰 엔 크리스토)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하나의 방식은 그리스도의 소유격Χριστοῦ(크리스투)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에게 속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고린도후서 10장 7절 "누구든지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예시이다. 

바울 사도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어느새 그리스도 공동체 속에 긍정적인 뉘앙스로 들어왔고, 지금은 신앙의 삶을 표현하는 표준적인 정체성 언어가 되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2세기에 있었던 교회에 대한 박해에 주목한다.

주후 110년경 비두니아-본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the Younger Pliny)가 트라얀(Trajan) 황제에게 보낸 서신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앞에 끌려온 자들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랐습니다. 먼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인지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들 이 그렇다고 인정하면 ... 즉시 그들을 처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 . . 나는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부인하거나 예전에 그리스도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 나를 따라서 신들에게 기원하는 기도문을 복창하고 당신의 동상 앞에 포도주와 분향을 드리고 ... 나아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한 자들에게는 사면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일들 중 그 어느 것도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플리니 총독은 박해의 상황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호칭하며,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느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박해와 연관된 언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정체성 언어가 되어 갔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2세기 중반에 박해 과정에서 순교한 서마나의 교회 지도자 폴리캅 이야기이다. 폴리캅은, 여기서 인용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편지에서(Ep. 10:1; 12:1) 스스로를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스)이라고 지칭하였는데, 폴리캅이 사용한 "그리스도인"을 후에 폴리캅의 순교를 묘사한 순교사가들이 다음과 같이 부각하였다. 


황제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계속 강요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체하면서 나에게 황제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자꾸 재촉하는데, 내가 똑똑히 이야기할 테니 잘 들으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와 같이 박해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황제에게 절하지 않은 자,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신이 경배할 유일한 대상이라고 믿었던 사람으로 제시된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처음 "그리스도인"은 안디옥 교회의 낯선 사람들에게 외부인들이 붙여준 별칭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삶의 양식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에서 어울린다"는 점에서 특별하였고,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담을 수 있는 호칭이 없었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조어가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좋아했든 아니든, "그리스도인"은 출발부터 "유대인도 없고 이방인도 없는"(갈 3:28) 보편성을 보여주는 언어였다. 하지만, 바울 사도를 비롯한 초기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별로 열광하지 않았고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특징을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언어가 그리스도인들의 자기 정체성 표현으로 정립되는 과정에는 2세기 박해 상황이 놓여 있다. 박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은 외부인이나 내부인 모두에게,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예수만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호칭/지칭하는 정체성 언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