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 보혜사)에 대하여

김범식
202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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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주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만 특별하게 사용된 성령에 대한 명칭이 있다. 그것은 수동태 동사형에서 온 형용사 형태를 보이는 명사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이다.  개역개정 요한복음에서는 이 단어를 ‘보혜사’(保惠師)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고(요 14:16, 26; 15:26; 16:7), 요한일서에서는 ‘대언자’(요일 2:1), 새번역에서는 ‘중보자’라고 번역하고 있다.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의 직역적 의미는 ‘곁에 있도록 소환되었다”라는 뜻이다. 누군가의 곁에서 위로와 도움을 주거나, 문제에 대해 자문이나 증언을 해 주거나, 법률적 자문과 소송을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구약의 70인경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다만 욥이 친구들에게 오히려 괴로움을 더해 주는 ‘위로자들’(파라클레토레스)라고 부르는 원망의 말에서 같은 어근의 명사형을 볼 수 있다(욥 16:2).

 영어 성경들은 Helper, Counselor, Comforter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지만, 대체적으로 누군가를 중보하거나 대언하는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점에서 Advocate로 번역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예수는 성령을 다른 보혜사로 제자들에게 준다고 말함으로 자신이 바로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임을 전제하고 있다(요 14:6; cf. 요일 2:1). 자신은 세상을 떠나가지만 영원히 곁에 있도록 소환된 존재가 성령이고, 이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부른다(요 14:17). 진리의 영을 후에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요 16:13). 진리의 성령은 제자들의 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고 예수가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고(14:26), 예수에 대해서 증언하고(15:26),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들은 것을 말하고, 장래 일을 알려주는 일을 한다(16:13).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를 법정에서 피고를 변호해 주는 변호사, 혹은 반대로 죄가 있음을 탄원하고 기소하는 검사와 같은 법적 용어로 생각하는 것은 이미 라틴 교부들이 이 단어를 advocatus라고 번역할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요한복음의 다음 구절은 이런 성령의 역할에 분명히 드러낸다:

“그가(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다시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 16:8-11).

성령은 법정이나 권세자들 앞에서 피고를 위해 증언해 주는 대언자(변호사, defense attorney)의 역할뿐만 아니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의 법정에 기소하는 검사(prosecuting attorney)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변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 대해서 죄가 있음을 드러내고(convict) 심판 받아야 함을 주장하는 검사의 역할도 하고 있다. 보혜사 성령을 이야기할 때, 요한복음의 저자는 세상과 성령이 서로 대척점을 이루고 있음을 강조하는 가운데,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령(요 14:17), 세상이 미워하는 제자들을 증언하게 해 주는 성령(요 15:26), 지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모든 진리(full truth)로 인도하실 성령임을 강조한다(요 16:13).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는 성도들의 곁에서 증언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을 말하는 마가복음 13장의 전승을 따르고 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메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11).

구약성경의 70인경에는 단어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가 나오지 않지만,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아브라함의 중보(창 18:23-33,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모세의 중보(출 32:11), 혹은 여러 선지자들의 중보자(mediator)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동시에 정의로운 심판을 원하는(민 16:15; 렘 18:20) 중보자의 전승은 후기 유대교와 신약성경에서 신적인 중보, 곧 성령의 중보로 발전하였다. 세속적 법정용어로서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고, συνήγορος(수네고로스, 변론자), κατήγορος(카테고로스, 고발자)가 사용되었지만, 종교적 용어로서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동시에 공의를 말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한다. 그래서 후기 유대교(Philo의 작품이나 랍비들의 문서)에서,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이 단어의 차용어 פְּרַקְלִיט (프라크리트)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며 백성을 변호하고, 또한 죄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호소하는 하나님의 종들의 중보는 이제 신약시대에 성령의 중보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사역의 마지막 조각처럼 교회시대를 연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혜사, 즉 대언자로서 오시는 성령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응답으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눅 11:13). 보혜사 성령은 성령의 민주화일 뿐만 아니라(요엘 2:28), 임마누엘의 계속되는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