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맹률이 높고 문자로 된 책이 대중화 되기 이전이었던 초대교회에서 신앙 교육은 "본 보임-본 받음"을 통하여 일어났다. 이는 단순한 교육의 방법론이 아니라 신앙을 전수하여 교회를 세워가는 가장 기본적인 사도의 활동이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이미 데살로니가전서와 고린도전서 중심으로 일점일획묵상글을 쓴 적이 있다(본받는 사람, 본이 되는 사람에 대한 묵상; 체득-체현에 관한 묵상). 같은 주제의 글을 한번 더 쓰되, 더 넓은 지평에서 묵상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본을 만들고 본을 배우는 교육 방식은 초대교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교육 방식이다. 멘티들은 멘토를 닮아가고, 어린이들은 어른을 닮아가는 것, 그리고 과거 속에서 교훈을 찾아 더 나은 현재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아나키메네스(Anaximenes)나 아리스토렐레스(Aristotle)과 같은 철학자들이 채용한 교육 방식이었다. (여기서 아나키메네스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름은 소수의 예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이 방식을 택하였다.)
- 이런 본은 역사 속에서도 찾지만,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문학이나 신화 속에서도 찾는다. 문학과 신화를 읽는 관점은 주로 "본"(example)을 찾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구약을 읽는 목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철학자들은 좋은 본 뿐만 아니라 나쁜 본을 들기도 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언어는 παράδειγμα(파라데이그마)이다. 성경에는 이 명사형은 사용되지 않았고 παραδειγματίζω(파라데이그마시조)라는 동사형만 사용되었는데, 그것도 "나쁜 본을 보이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끄럽게 만들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1:19, 히 6:6). 어쨌든 철학자들은 바울 사도 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쁜 예를 활용하였다.
- 이 과정 속에서 거듭 거론되며 검증된 본이 되어, 사회 일반이 받아들이는 일종의 prototype이나 model으로 확립되는 경우가 나오는데, 이를 χρεία(크레이아)라고 한다. 크레이아는 성경에서는 주로 "필요"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prototype이나 model의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전도는 곧 교육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바울 사도는 철학자들의 교육 방식을 차용하여 교회를 세워갔다. 철학자들이 크레이아라고 사용한 것에 대해 바울 사도는 τύπος(튀포스)를 사용하였다. 바울 사도는 자신은 예수를 본받는 사람이고(μιμηταί 미메타이), 자신이 전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본(τύπος)이 되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본받으라 하였지만, 그말은 바울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바울 안에 녹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이 바랬던 것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바울이 각인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μορφόω, 그리스도가 형성되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바울 사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고(고린도전서 11:1) 이어서 자신보다 신앙이 어린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이 되길 권했다(데살로니가전서 1:7). 이로써 τύπος(튀포스, 본이 됨)-μίμησις(미메시스, 본 받음)라는 신앙 전승의 시스템이 세워지게 되었다. 빌립보서의 이 말씀은 이런 시스템을 잘 보여준다.
빌립보서 4:9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본 보이고 본 받는 방식을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는 것에 대해서는 디모데가 좋은 사례가 된다.
데살로니가전서 3:2-3
우리의 형제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여러분에게로 보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러분을 굳건하게 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격려하여, 아무도 이러한 온갖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21-22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의 인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17
이 일 때문에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얻은 나의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나의 생활 방식을 여러분에게 되새겨 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그대로 말입니다.
이와 같이 디모데는 바울 사도의 본을 받은 제자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을 대신하여 본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초대교회에서 신앙의 전수가 본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래 성구들은이 점을 보여준다. 본 받음에 관한 바울 서신 구절을 나열하며 글을 마친다.
데살로니가전서 1:6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갈라디아서 4: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cf.이방인 같이 산 바울. 갈 2: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6b-8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고린도전서 4:16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문맹률이 높고 문자로 된 책이 대중화 되기 이전이었던 초대교회에서 신앙 교육은 "본 보임-본 받음"을 통하여 일어났다. 이는 단순한 교육의 방법론이 아니라 신앙을 전수하여 교회를 세워가는 가장 기본적인 사도의 활동이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이미 데살로니가전서와 고린도전서 중심으로 일점일획묵상글을 쓴 적이 있다(본받는 사람, 본이 되는 사람에 대한 묵상; 체득-체현에 관한 묵상). 같은 주제의 글을 한번 더 쓰되, 더 넓은 지평에서 묵상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본을 만들고 본을 배우는 교육 방식은 초대교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교육 방식이다. 멘티들은 멘토를 닮아가고, 어린이들은 어른을 닮아가는 것, 그리고 과거 속에서 교훈을 찾아 더 나은 현재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아나키메네스(Anaximenes)나 아리스토렐레스(Aristotle)과 같은 철학자들이 채용한 교육 방식이었다. (여기서 아나키메네스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름은 소수의 예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이 방식을 택하였다.)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전도는 곧 교육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바울 사도는 철학자들의 교육 방식을 차용하여 교회를 세워갔다. 철학자들이 크레이아라고 사용한 것에 대해 바울 사도는 τύπος(튀포스)를 사용하였다. 바울 사도는 자신은 예수를 본받는 사람이고(μιμηταί 미메타이), 자신이 전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본(τύπος)이 되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본받으라 하였지만, 그말은 바울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바울 안에 녹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이 바랬던 것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바울이 각인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μορφόω, 그리스도가 형성되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바울 사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고(고린도전서 11:1) 이어서 자신보다 신앙이 어린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이 되길 권했다(데살로니가전서 1:7). 이로써 τύπος(튀포스, 본이 됨)-μίμησις(미메시스, 본 받음)라는 신앙 전승의 시스템이 세워지게 되었다. 빌립보서의 이 말씀은 이런 시스템을 잘 보여준다.
빌립보서 4:9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본 보이고 본 받는 방식을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는 것에 대해서는 디모데가 좋은 사례가 된다.
데살로니가전서 3:2-3
우리의 형제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여러분에게로 보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러분을 굳건하게 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격려하여, 아무도 이러한 온갖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21-22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의 인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17
이 일 때문에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얻은 나의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나의 생활 방식을 여러분에게 되새겨 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그대로 말입니다.
이와 같이 디모데는 바울 사도의 본을 받은 제자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을 대신하여 본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초대교회에서 신앙의 전수가 본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래 성구들은이 점을 보여준다. 본 받음에 관한 바울 서신 구절을 나열하며 글을 마친다.
데살로니가전서 1:6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갈라디아서 4: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cf.이방인 같이 산 바울. 갈 2: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6b-8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고린도전서 4:16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