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23:38의 고대사본(시나이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죄목패에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적혀 있다고 설명하였다. 당시 사용되던 세 언어로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죄목패에 새기게 했다. 유대인 예수이기에 히브리어로 썼고, 당시 상업적 문화적 언어였던 코이네 헬라어, 관료적 행정적 언어로서 라틴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아직 라틴어(로마의 언어)는 일부 지식계층에게 그리고 제국의 행정적 언어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기에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누가복음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전해지는 복음이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로 전해질 것이기에, 죄목패에 라틴어로(로마이코스 Ῥωμαϊκός) 십자가의 의미를 새긴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새겨진 ‘유대인의 왕 예수’는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에 의해 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로마에 선포될 것이다(행 28:16). 요한복음 19:20에도 십자가의 죄목패에 새겨진 세 가지 언어(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Ῥωμαϊστί 로마이스티)를 똑같이 증언하면서, 헬라인들이 찾아오고(요 12:20), 로마총독이 판결하고, 로마 백부장과 군인들이 집행하는 십자가는 결국 예수가 높이 들리는 영광의 사건임을 증언하고 있다.
로마(로메 Ῥώμη)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 8번 나오는데 그 중에 사도행전에 5번, 로마서에 2번, 디모데후서에 한 번 나온다. 베드로후서 5:13에서는 도시 로마를 고대 이방제국의 수도 바벨론으로 상징처럼 호칭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하며, 자신의 선교여정과 계획을 말하며 로마교인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부부 사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서 고린도로 건너와서 바울의 고린도 사역에 함께 한 것을 사도행전이 증거하고 있다(행 18:2). 로마제국과 로마관리에 대한 호감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고발이 근거가 없고,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정치적 고발에 대하여 무죄라고 거듭 여겼지만, 결국 유대교 지도자들의 집요함과 예수를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하게 된 군중들의 실망과 분노에 예수를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로마총독의 원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된 결과이고, 복음서 저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책임론을 강조하며, 로마에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복음서의 저자 중에 누가는 복음이 로마로 향하면서, 더욱 친 로마적인 성향을 가지고 복음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예수님을 찾아온 마태복음 8장의 가버나움 로마백부장 이야기는 누가복음 7장에서 백부장을 더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로마의 백부장은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유대인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어준 사람이기에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께 그의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다(눅 7:3-4). 이 백부장은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가이사랴의 로마 백부장 고넬료(전형적인 로마인 이름 코르넬리우스)를 연상시킨다(행 10:2).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는 로마 백부장의 고백과 증언, 사도 바울을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총독들과 관리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에서 바울을 보호하여 총독에게 재판을 받도록 배려해 주는 로마의 천부장, 이 모든 것은 로마에 대한 호감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인, 로마시민을 뜻하는 명사 Ῥωμαῖος(로마이오스)는 신약성경에 12번 나오는데, 그 중에 11번은 사도행전에 사용되었고, 한 번은 요한복음 11:48에 사용되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 로마시민(Ῥωμαῖος 로마이오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투옥되었지만, 로마시민이기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났다(행 16:37, 38). 예루살렘에 잡혀서 산헤드린 공회에 넘겨지고, 유대교 지도자들의 음모에 의해 죽을 위기에 빠졌지만, 결국 로마 천부장에 의해 구출을 받게 된 것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행 22:26, 27, 29; 23:27). 바울이 예수의 부르심대로 로마황제 앞에 가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게 되는 것도 그가 로마 시민권자로 황제 앞에 재판을 받도록 호소하였기 때문이다(행 25:10, 21). 예수에 대한 빌라도 총독의 생각(눅 23:4, 14, 22), 바울에 대한 베스도 총독의 생각(행 25:25)은 그들이 무죄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로마에 대한 성경저자들과 초기 기독교인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유대인들은 정치적 억압자로서 로마를 생각하였기에 로마인(Ῥωμαῖος 로마이오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었다(요 11:48; 행 28:17).
요한계시록 저자가 로마를 고대 바벨론처럼 우상숭배자와 종교적 박해자로 동일시하며 로마의 멸망을 예언한 것은, 더 이상 기독교인과 복음전도자의 보호자가 아니라 박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울의 선교여정과 복음서 저자들의 시대에서 로마를 복음의 보호자이고 협력자라고 보고 있다. 열심당원들이 칼로 맞서는 반 로마적 입장이 만든 예루살렘의 불행보다는 화평의 복음으로 로마의 평화를 거부하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은 로마가 만든 도로를 따라 제국의 온 땅으로 향하고 있음을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보여주고 있다.
누가복음 23:38의 고대사본(시나이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죄목패에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적혀 있다고 설명하였다. 당시 사용되던 세 언어로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죄목패에 새기게 했다. 유대인 예수이기에 히브리어로 썼고, 당시 상업적 문화적 언어였던 코이네 헬라어, 관료적 행정적 언어로서 라틴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아직 라틴어(로마의 언어)는 일부 지식계층에게 그리고 제국의 행정적 언어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기에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누가복음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전해지는 복음이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로 전해질 것이기에, 죄목패에 라틴어로(로마이코스 Ῥωμαϊκός) 십자가의 의미를 새긴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새겨진 ‘유대인의 왕 예수’는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에 의해 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로마에 선포될 것이다(행 28:16). 요한복음 19:20에도 십자가의 죄목패에 새겨진 세 가지 언어(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Ῥωμαϊστί 로마이스티)를 똑같이 증언하면서, 헬라인들이 찾아오고(요 12:20), 로마총독이 판결하고, 로마 백부장과 군인들이 집행하는 십자가는 결국 예수가 높이 들리는 영광의 사건임을 증언하고 있다.
로마(로메 Ῥώμη)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 8번 나오는데 그 중에 사도행전에 5번, 로마서에 2번, 디모데후서에 한 번 나온다. 베드로후서 5:13에서는 도시 로마를 고대 이방제국의 수도 바벨론으로 상징처럼 호칭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하며, 자신의 선교여정과 계획을 말하며 로마교인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부부 사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서 고린도로 건너와서 바울의 고린도 사역에 함께 한 것을 사도행전이 증거하고 있다(행 18:2). 로마제국과 로마관리에 대한 호감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고발이 근거가 없고,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정치적 고발에 대하여 무죄라고 거듭 여겼지만, 결국 유대교 지도자들의 집요함과 예수를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하게 된 군중들의 실망과 분노에 예수를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로마총독의 원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된 결과이고, 복음서 저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책임론을 강조하며, 로마에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복음서의 저자 중에 누가는 복음이 로마로 향하면서, 더욱 친 로마적인 성향을 가지고 복음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예수님을 찾아온 마태복음 8장의 가버나움 로마백부장 이야기는 누가복음 7장에서 백부장을 더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로마의 백부장은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유대인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어준 사람이기에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께 그의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다(눅 7:3-4). 이 백부장은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가이사랴의 로마 백부장 고넬료(전형적인 로마인 이름 코르넬리우스)를 연상시킨다(행 10:2).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는 로마 백부장의 고백과 증언, 사도 바울을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총독들과 관리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에서 바울을 보호하여 총독에게 재판을 받도록 배려해 주는 로마의 천부장, 이 모든 것은 로마에 대한 호감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인, 로마시민을 뜻하는 명사 Ῥωμαῖος(로마이오스)는 신약성경에 12번 나오는데, 그 중에 11번은 사도행전에 사용되었고, 한 번은 요한복음 11:48에 사용되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 로마시민(Ῥωμαῖος 로마이오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투옥되었지만, 로마시민이기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났다(행 16:37, 38). 예루살렘에 잡혀서 산헤드린 공회에 넘겨지고, 유대교 지도자들의 음모에 의해 죽을 위기에 빠졌지만, 결국 로마 천부장에 의해 구출을 받게 된 것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행 22:26, 27, 29; 23:27). 바울이 예수의 부르심대로 로마황제 앞에 가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게 되는 것도 그가 로마 시민권자로 황제 앞에 재판을 받도록 호소하였기 때문이다(행 25:10, 21). 예수에 대한 빌라도 총독의 생각(눅 23:4, 14, 22), 바울에 대한 베스도 총독의 생각(행 25:25)은 그들이 무죄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로마에 대한 성경저자들과 초기 기독교인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유대인들은 정치적 억압자로서 로마를 생각하였기에 로마인(Ῥωμαῖος 로마이오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었다(요 11:48; 행 28:17).
요한계시록 저자가 로마를 고대 바벨론처럼 우상숭배자와 종교적 박해자로 동일시하며 로마의 멸망을 예언한 것은, 더 이상 기독교인과 복음전도자의 보호자가 아니라 박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울의 선교여정과 복음서 저자들의 시대에서 로마를 복음의 보호자이고 협력자라고 보고 있다. 열심당원들이 칼로 맞서는 반 로마적 입장이 만든 예루살렘의 불행보다는 화평의 복음으로 로마의 평화를 거부하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은 로마가 만든 도로를 따라 제국의 온 땅으로 향하고 있음을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