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길"에 대한 묵상(우진성)

관리자
20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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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사람 예수


예수님은 길의 사람이었다. 그는 길 가는 분이셨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마2:1)에 머물기 보다는, 늘 길 위를 사시며 여행하셨다. 복음서는(특히 마가복음)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하면서, 이야기와 이야기들을 "길에 관한 간단한 서술"을 사용하여 연결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가버나움을 떠나는 이야기는 마가복음 4장,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막 4:35)


예수님의 길은 이렇게 육지 길 뿐만 아니라 바다 길을 포함한다. 이때 시작된 여정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를 때까지 예수님은 "길 위"에 계셨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형편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마가복음이 예수님 이야기를 어떻게 "길" 관련 표현을 통하여 엮어가는 이 글 아래에 따로 인용해 두었다. 문맥을 끊지 않기 위해 아래에 따로 정리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길은 헬라어로 호도스ὁδός이다. 


εἰς τὴν ὁδόν(에이스텐호돈) 길을 떠나다. 

ἐν τῇ ὁδῷ(엔테호도) 길 위에 서다.


마가복음은 주로 이 두 헬라어 표현을 사용하여 길 떠나는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길


호도스는 먼저 물리적인 길을 말한다. 그러나 물리적 길만을 의미하지 않고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단순히 물리적 길을 걸으신 것만은 아니다. 길 위의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없던 새 길을 내셨다. "새 길"이라고 할 때, 길은 이제 물리적 길이 아니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래 인용구들을 읽어보자. "길"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바리새파의 율법학자들이, 예수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막 2:16-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5)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 3:33-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막 8:34-35)


예수께서 앉으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막 9:35)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막 10:43-44)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들은 어떻게 들렸을까? 당황스러울만큼 놀라운 이야기, 그 시대에 없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 시대에 뿐만 아니라 오늘 날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여전히 급진적으로 새로운 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호도스이다. 새 길이다.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그 길을 예수님께서 걸었고, 가르쳤고, 그 길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이 지칭되는 방식, 길(the Way)


사도행전에도 길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다 적을 수는 없고, 그 중 9장 2절에 먼저 주목해 보자.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행 9:2)


그리스도인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 도를 믿는 사람"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역개정의 번역은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원문으로 보면 이 표현은 


τῆς ὁδοῦ ὄντας(테스호두온타스)


이다. 테스 호두는 "길"의 소유격이다. 뒤의 온타스는 be-동사의 분사로 being이다. "길"의 소유격과 be-동사의 분사형이 함께, 영어로 직역하면 being of the way 정도가 된다. 이 헬라어 표현을 "도을 믿는 사람" 혹은 "도를 따르는 사람"으로 번역한 새번역 개정개역 모두 의역이 과하다. 

소유격이 쓰이면 그 소유격이 담고 있는 함의가 무엇인지(구문론) 살펴서 번역에 반영해야 한다. 여기 쓰인 소유격의 함의는 "소속"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영어 성경에 그렇게 번역한 예가 있다. 


τῆς ὁδοῦ ὄντας 

any belonging to the way(ESV) 

any who belonged to the way(NRSV)


이를 한글로 옮기면 "그 길에 속한 사람"이 적절하다. "그 도를 믿는 사람"과 "그 길에 속한 사람", 두 번역의 차이는 크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 "길"을 "도"라고 번역하면, "길"이라는 생생한 언어가 가진 구체성이 사라지고 추상화 된다. 
  • "도"가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님의 길이 믿음의 대상이 되어, 믿는 이로부터 유리되어 '저기' 존재하는 무엇이 되었다. 걸으라고 있는 길을 함께 걷는 동질감과 일체감이 사라졌다. 
  • 반면, "그 길에 속한 사람"이라고 번역하면, 이런 문제가 문제가 사라지고, 누구를 지칭하는지 분명해진다.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한 방식이 ἡ ὁδός/ the Way 였다. 때로는 "주님"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불려졌다. 


τὴν ὁδὸν τοῦ κυρίου(텐호돈투퀴리우)

the  Way of the Lord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내용, 즉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가리킬 때 이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앞서 인용한 사도행전 9장 2절에서 그것을 알 수 있고, 19장 23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 무렵에 주님의 '도' 때문에(περὶ τῆς ὁδοῦ페티테스호두)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행 19:23)


내용상 여기서 말하는 "도"가 예수님의 가르침이겠는가? 에베소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논쟁하느라 소요가 발생한 것인가? 아니다. 소요의 원인은 바울 사도와 그의 일행이었다. 그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을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에(26절), 그래서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배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27절)이 있기 때문에 에베소 사람들이 격분하는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에베소의 이 장면은 그리스도인들이 "호도스", "the Way", "길"로 불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24장,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체포 되어 로마총독 벨릭스 앞에서 심판 받을 때 이야기에는 호도스의 두 가지 용례가 모두 담겨 있어 흥미롭다.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 곧 예수님께서 내신 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의 말 속에서 호도스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나는 총독님께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믿는다는 사실입니다.(행 24:14)


반면, 벨릭스의 응답 속에서 호도스는 그리스도인 혹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벨릭스는 그 '도'와 관련된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당신들의 소송을 처리하겠소" 하고 말하고서, 신문을 연기하였다.(행 24:22)


벨릭스의 언급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명백히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마무리


글을 마무리 하며 정리해 보자. 신약성경에서 "길"은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 예수님께서 여신 새로운 삶의 방식
  • 그 길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인들이 "길"이라 불렸다는 사실이 다가온다. 예수의 길을 따르는, 혹은 예수의 길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렸으리라. "예수의 길"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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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마가복음의 예수님의 길 관련 언급

5: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5:21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맞은편으로 다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6: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6:6b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을들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셨다.

6:7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3)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셨다.

6: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6:53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7:24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7)두로 지역으로 가셨다.

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8:22   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8:2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의 가이사랴에 있는 여러 마을로 길을 나서셨는데,

9: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9:30   그들은 거기에서 나와서, 갈릴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9:33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10: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가,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다.

10: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물었다.

10:32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10: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11:1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곧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