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 속량)에 대하여

김범식
2025-02-07
조회수 942

예수의 죽음에 대한 신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구속 혹은 속량(redemption)의 신학이다. 속량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바울서신에 사용된 것은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이다. 이 단어는 다음 세대의 바울서신(deutero-Pauline)이라 할 수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구속신학의 관점으로 분명히 사용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ἀπολύτρωσις)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사도 바울의 전승에 근거한 서신들(에베소, 골로새서)은 예수의 죽음이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이고, 곧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고, 미래에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구속신학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음 세대의 구속신학은 바울의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ἱλαστήριον)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4-25)


헬라어 명사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는 구약의 70인경 다니엘서 4:34에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이성이 온전히 되돌아오는 자유(release)를 말할 때에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 구약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지극히 세속적 용례에만 사용된 단어라 할 수 있다. 죄수나 노예의 자유를 얻기 위해 돈(ransom)을 지불하는 것에 사용된 단어였다. 돈으로 사게 된 자유, 해방, 구원을 뜻하는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 아포루트로시스)이다. 그런 점에서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주전 1-2세기의 헬레니스트 유대인 저술가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단어였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단어를 특별하게 사용하였는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의미하는 신학을 세우면서, 법적 용어라 할 수 있는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 즉 돈(ransom)을 주고 노예나 죄수의 자유와 생명을 사는 개념을 세속용어에서 차용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단순히 경제적 법적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성경전승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제사와 제물이라는 종교적(cultic) 개념으로 ‘속량’(redemption)을 생각한 것이다. 롬 3:25에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화목제물로 세워진 것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한글성경 번역은 ‘화목제물’이라 하였지만, 이것의 본래적 뜻은 지성소에 있는 속죄소(히라스테리온, ἱλαστήριον)를 말한다. 예수의 피가 속죄소에 뿌려진 피처럼, 하나님의 눈에서 인간의 죄를 간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바울은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를 단순히 자유를 주는 ransom(속량값)의 의미로 사용하기보다는 제물이라는 대속(redemption)의 개념을 이 단어에 부과한 것이다. 아직까지 구속신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이 단어의 동사 ἀπολυτρόω(아폴루트로오)가 신약성경에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세속적 용어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를 구속신학의 용어로 사용한 최초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바울의 구속신학은 다음 세대의 에베소와 골로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바울의 구속신학과 상관없이 사용된 세속적 용례는 히브리서 11:35에서 분명히 보이고 있다. 믿음 때문에 감옥에 갇힌 성도들이 옥에서 풀려나기(ἀπολύτρωσις, release)를 거절하였다는 증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바울은 단순히 죄에서 놓임받는 것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기를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몸의 구속’을 바라며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 를 사용하였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 )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바울은 구속신학을 넘어, 미래적 종말론으로서 썩어질 몸의 속량(구원)이 이루어져서 부활의 몸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sonship)의 개념으로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ἀπολύτρωσις(아포루트로시스)는 지극히 바울적인 용어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은 곧 예수가 흘린 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바울의 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