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δέω(데오, 묶다)에 대하여

김범식
2025-01-02
조회수 907

동사 δέω(데오)는 신약성경에서 43번이나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줄이나 끈으로서 묶는다(bind, 마 13:30; 막 11:2), 혹은 무엇으로 감싸다(wrap up, 요 11:44)의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쇠사슬로 묶인다(chain, 막 5:3, 마 22:13)의 뜻은 조금 더 확장되어서 감옥에 갇히다(imprison, 막 6:17; 요 18:12; 행 9:2)의 의미가 있다.

δέω(데오)는 추상적 개념으로 결혼관계에 구속되다(committed, 롬 7:2; 고전 7:27), 초월적 존재에 의해 지배당하다(ruled, 눅 13:16)의 은유적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된다. 헬라어 구약성경(LXX)에서 이 단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אסר(아사르)인데, 추상적 의미보다는 무엇인가로 묶다의 뜻으로 일관되게 사용되었다.

특별히 마태복음에서 δέω(데오)는 10번이나 사용되었다. 마태복음은 복음이 가진 권세로서 묶고 푸는 것(bind and loose)이 있는데, 사람들의 영혼이나 삶에 무엇을 얽어 매거나 혹은 반대로 자유롭게 하는 종교적 주술적 행위에 대한 기독교적 반박을 한다. 주술 혹은 마술행위를 통하여 고대 사람들은 축복과 저주행위를 하였는데, 이런 행위는 유대교에서 금지되는 것이지만, 유대교에서 금지(bind)와 허락(loose)의 결정을 랍비들의 율법규정과 해석에 근거하여 의무를 부여하거나,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마태복음은 이런 랍비의 권세를 부정하며, 교회의 권세로 대치하였다. 마태복음은 랍비들의 bind and loose의 권위를 부정하며, 그것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교회의 권세임을 강조하였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δέω),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λύω)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주님에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과 함께 주신 교회의 권세를 오늘날 카톨릭 교회에서 천국열쇠를 가진 교황(Pope)의 권세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베드로 개인이나 혹은 베드로의 후계자가 가진 권세이기보다 랍비의 권세를 부정하며 교회가 가진 권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이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7-18).

이 구절은 형제가 죄를 범하였을 경우에 권고해야 할 개인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교회의 권고를 듣지 않을 경우, 이방인과 세리, 즉 죄인으로 간주하라고 말한다. 교회의 권세로 더 이상의 용서 없이 죄인으로 간주하라는 말이다. 죄에 대한 bind and loose의 권세를 교회가 가졌음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묶거나 풀 수 있는 권세의 의미는 곧 죄에 대한 용서의 권세를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병행구절은 이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

죄의 용서에 대한 권세는 유대교에서 랍비에게 부여된 권세였고, 성전 지도자들인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에게는 성전체제를 통하여 부여받은 권세였다. 기독교는 그들의 권세를 부정하고, 인자 예수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졌음을 말한다(막 2:9). 그리고 예수는 이 권세를 자신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나의 교회»에게 위임하였다.


마태복음은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부정적 시각에 대한 반박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반박에는 랍비에 대한 기독교의 거부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

랍비의 bind and loose가 아니라, 교회의 bind and loose임을 강조하며, 죄의 용서는 교회가 가진 권세이면서도 은총임을 알리고 있다. 마태복음은 유대교에 속한 서기관이나 랍비로 사는 종교인이 아니라, 천국의 서기관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하고(마 13:52), 이제는 성전(제사장)이나 율법(랍비)이 아니라, 인자 예수의 용서하는 권세가 주를 고백하는 형제들로 이루어진 교회로 위임되었음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