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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ברא)와 바달(בדל) – 창세기 1장의 창조 개념에 대한 묵상(송민원)

관리자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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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맨 처음 나오는 동사는 바라(ברא)입니다. 성경이 기록하는 하나님의 첫번째 행위이자,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성경을 시작하는 책 이름 “창세기(創世記)”의 첫 글자인 “창(創)”은 바로 이 바라(ברא)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동사는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표현하는 다른 동사들, 예를 들어, ‘하다, 만들다(to do, to make)’라는 뜻의 아사(עשׂה)나, ‘빚다(to form, to fashion)’라는 뜻의 야짜르(יצר)는 사람을 주어로도 얼마든지 쓰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 바라(ברא)의 행위는, ‘(죄를) 용서하다’라는 의미의 살라흐(סלח)와 더불어, 언제나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에 속한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바라(ברא)의 어원적 의미

여기에는 조금 더 깊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같은 형태의 어근 바라(ברא)가 사람을 주어로 쓰인 경우들이 성경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수 17:15, 17:18, 겔 23:47). 이때 이 동사는 모두 피엘형으로 나타나고, ‘(돌이나 나무 등을) 자르다/깎다/조각하다, (잘라서) 치우다/깨끗이 하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HALOT이나 TWOT는 하나님의 창조를 가리키는 바라(ברא)와 ‘자르다/깎다/조각하다’라는 뜻의 바라(ברא)를 동음이의어로 취급해서 서로를 구별하는데, 이러한 구분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창조’와 ‘돌이나 나무 등을 깎아 무언가를 만드는 인간의 창조’를 도무지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신학적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는 듯 보입니다.

‘창조하다’라는 행위와 ‘조각하다(깎아 만들다)’라는 행위는 범주 상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의미에서 추상적인 의미가 파생된다는 히브리어의 기본 원칙에서 보면, ‘조각하다(깎아 만들다)’라는 구체적인 행위가 기본적인 어원이 되고, 여기에서 ‘창조하다’라는 추상적인 의미가 파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어원학자나 사전학자들이 이러한 기본 원칙과 상식을 이 경우에 적용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의 유의 창조(creatio ex nihilo)’여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의 첫번째 핵심 단어: 바달(בדל): ‘나누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개념은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 개념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흑암(호쉐크 חֹשֶׁךְ)”과 “깊음(테홈 תְּהוֹם)”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물(마임 מַיִם)”이 있으라는 말씀도 없었는데 어떻게 물이 창조되었는지 성경은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반대의 개념인 ‘유에서의 창조(creatio ex materia) 개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부족합니다. “땅의 흙”으로 사람과 동물(“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을 만드신 창세기 2장 7절과 19절, 그리고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만드신 2장 21-22절을 제외하고, 그 외의 것들은 어떤 물질(materia)에서 만드신 것인지 성경은 전혀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성경의 창조기사가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창조 개념 그 어느 것도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이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철학적 개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창세기 1장의 창조 개념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개념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창세기 1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핵심 단어가 무엇인지, 1장 각 절의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창세기 1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는 것이 문법적으로 가장 적절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시작하실 때 (상황은 이러했다):

                           땅은 완전 엉망진창(토후바-보후 תֹהוּ וָבֹהוּ)이었고

                           어둠은 테홈 위에, 바람(하나님의 호흡)은 물을 감싸고 있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왜 창조 행위를 시작하셨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상태, 여기서 하나님의 첫번째 창조가 시작됩니다: “빛이 있으라”(창 1:3). 그리고 빛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설명문이 그 뒤를 잇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사”(창 1:4).

‘나누다, 구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바달(בדל)이 창세기 1장의 창조 개념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빛을 창조하신 이유는 빛과 어둠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낮과 어둠, 아침과 저녁을 구분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이 구조는 그 다음날의 창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둘째 날 “궁창(라끼아 רָקִיע)”을 창조하신 이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물과 물로 나뉘라(바달 בד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구분할 목적으로 궁창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땅과 바다가 창조된 셋째 날의 기사(창 1:9-10)에는 그 어떤 ‘새로운 것’이 창조되지 않습니다. 단지 언제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모를 “물”이 한 곳으로 모였을 뿐입니다. 물이 모여서 바다와 육지로 나뉘는 것이 핵심사항입니다.

하늘의 “광명체들”을 창조하신 넷째 날의 경우에도 그 창조 목적은 동일합니다: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바달 בדל).” 이 날의 창조도 다음의 구절로 완결됩니다: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바달 בדל).”



창세기 1장의 두번째 핵심 단어: “종류대로”


나뉘어진 땅과 하늘이 빈 공간이라면 하나님은 그 곳을 여러 생명체들로 채우십니다. 그 때 사용된 핵심단어는 “각기 종류대로”입니다. 창조된 공간을 식물과 나무들, 바다와 하늘의 동물들, 육지 생물들로 마구잡이로 채워 넣으신 것이 아니라, 개별 생명체들을 “각기 종류대로”, 즉 질서정연하게 구별하고 나누십니다.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듯 창세기 1장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이자 1장의 ‘창조’의 핵심단어는 “나뉨”과 “종류대로”입니다. 혼돈의 상태를 정리하여 하루라는 단위를 설정하고 계절과 절기 등 매해 반복되는 규칙적인 시간들을 설정하며,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확실히 하고 거기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질서 있게 종류별로 창조하십니다.



창세기 1장의 세번째 핵심 단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또다른 표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창 1:4, 10, 12, 18, 21, 25, 31). 여기서 “좋았더라”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또브(טוֹב)를 번역한 것입니다. ‘선(善)’을 의미합니다. 현대인의 언어감각에서는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은 다른 범주에 속한 개념이지만, 히브리어에서는 ‘좋은 것’은 ‘선한 것’이고 ‘옳은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좋다’고, 혹은 ‘선하다’고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문맥적 위치를 살펴보면 그 해답을 알 수 있습니다.


창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 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빛을 비롯한 창조물들을 보시고 좋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냥 단순히 피조물들 자체가 좋다기 보다는, 그 피조물들이 잘 구별되고 나뉘어진 상태, 종류별로 정리되어 창조된 상태를 ‘좋은 상태’ 혹은 ‘선한 상태’이자, ‘옳은 상태’라고 성경은 판단합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는 무질서(Chaos)한 상태에서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를 만드신 것이 창세기 1장의 창조개념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개념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로(from Chaos to Order)’의 창조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지고 계절의 변화가 있고 별들이 예측 가능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오는 규범적 질서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선언이자 신앙고백입니다. 세상이 움직이는 규범이자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그리스어로는 로고스(λόγος)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의 창조선언에서 나오는 그 단어입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강조했다기 보다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는 규범과 원리를 창조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동양의 표현으로는 도(道)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중국어 성경의 영향이라 생각됩니다만, 1900년에 출간된 우리말 성경은 로고스를 “도”라고 번역합니다. 저는 이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 도가 이스되 도가 하느님과 함게 하니 도는 곳 하느님이라 이 도가 처음에 하느님과 함게 하매 만물이 말무야 다 지여스니”





1900년 출판된 우리말 성경(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소재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