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귀신"에 대한 묵상(우진성)

관리자
2024-11-09
조회수 1130

성경은 귀신에 대해 말하는가?


성경에는 귀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성경 앱에서 "귀신"으로 검색어를 넣으면 117번의 검색 결과가 나오고, 그중 복음서(마태 23, 마가 36, 누가 34, 요한 6회)와 사도행전(7회)에 등장 비율이 가장 높다. 합하여 107회에 이른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미리 말하겠다. 한글 성경에서 사용된 "귀신"이라는 번역은, 원문과 거리고 있는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이다. "귀신"이 무엇인가? 한국 문화에서 "귀신"은 한마디로 "죽음 후에, 저승에 가지 못한 혼"을 말한다. 더 깊이 있는 귀신 이해도 가능하겠으나, 이 표현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귀신"에 대한 요점이라는 데에 반대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귀신들이 그런 혼백들인가?" 질문하게 된다.  

이 글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런 뜻으로 쓰인 용례는 없다. 적어도 가장 빈도수 높게 "귀신"이 나오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용례에서는 그런 뜻으로 쓰인 용례를 찾을 수 없다. 

한글 성경에서 "귀신"으로 일관되게 번역된 헬라어는 기본적으로 두 종류이다. 하나는 πνεῦμα ἀκάθαρτον(프뉴마 아카타르톤)인데, 직역하면 "더러운 영"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흔히 demon(데몬)으로 발음하는(어떤 문화권에서는 daemon다이몬으로 발음하기도 하는) δαιμόνιον(다이모니온)이다. 이 둘과 이것의 변형이 모두 한글 성경에서는 한결같이 "귀신"으로 번역된 것이다. 성경 번역자는 "더러운 영"이나 "데몬"(외래어)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귀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운 번역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귀신"에 붙어 있는 한국적 이해가 이 번역에 더해지면 문제가 생긴다. "귀신"은 인간의 혼백에 대한 언어인 반면, "더러운 영"과 "데몬"은 별도의 영적 존재에 대한 언어이다. 성경에 "귀신"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죽은 인간의 혼백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 번역의 문제는 신앙생활 현장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전의 내 경험이다. 교인 중 한 명이 귀신에 들렸다. 잠을 자지 못하고 헛것을 보며 헛소리를 하는 증세로 괴로와 하였다. 꿈에서 귀신을 만나는데, 귀신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혼백으로 나타나 같이 살겠다고 한단다. 그 교인의 남편은 아내가 이상해졌기에 귀신 쫓아주기를 목사에게 요청하였으나, 막상 귀신들린 당사자는 귀신 쫓기를 거부하였다. 이유인 즉슨, 어머니 살아생전 불효하여 괴로웠는데, 이렇게 혼백으로라도 찾아와 주시니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찾아온 어머니의 혼백을 모시고 이제라도 효도하겠다고 한다. 어머니 혼백이라도 모시겠다고 눈물짓는 이 교인에게 줄 수 있는 목회적 안내는 무엇인가? 

이런 일을 만났을 때 바른 성경 지식이 필요하다. 성경은 귀신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가? 아래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오는 "귀신" 용례 107개를 모두를 원전으로 찾아 읽고 정리한 내용이다. 성경의 "귀신" 용례를 원어로 읽으면, 성경이 말하는 "귀신으로 번역된 존재"는 한국 문화 속의 "귀신"과 아무 상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데몬 δαιμόνιον 


귀신에 해당하여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데몬(δαιμόνιον다이모니온)이다. 데몬은 semi-god 혹은 semi-divine being 즉 신과 인간 사이에 위치하는 반신半神적 영적 존재이다. 신약은 신약 시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 안에서 쓰였다. 그 시대 세계관이 설명하는 세계에는 "하나님과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무수한 신적 존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세계관이다. 

  • 예를 들어 마가복음에서 예수를 광야로 이끈 영(πνεῦμα프뉴마, 1:12) , 
  • 그곳에서 예수를 시험한 사탄(σατάν사탄, 1:13), 
  • 마태복음이 전하는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사탄을 대신하는 데블(διάβολος디아볼로스, 마 4:1, cf.요 8:44), 
  • 혹은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천사들(ἄγγελος앙겔로스, 눅 1:11 등), 
  • 마태복음이 말하는 데블의 천사들(τῷ διαβόλῳ καὶ τοῖς ἀγγέλοις αὐτοῦ토 디아볼로 카이 토이스 앙겔로이스 아우토, 마 25:41. "마귀와 그 사자들"이라고 번역됨) 등을 꼽을 수 있다. 

데몬은 그런 존재 중 하나이다. 사탄 데블 데몬 천사 사이의 높낮이나 관계는 명확하지 않고, 이 지면은 그것을 논하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데몬이 상대하는 존재가 대개 개별 인간인 점을 감안하면, 데몬은 그런 영적 존재 중에서도 비교적 낮은 위치에 있다고 추정된다. 어쩌면 데몬은, 위의 마태복음 25장 41절이 말하는 "마귀의 천사들"과 같은 존재이거나 같은 수준의 존재일 수 있다. 

데몬과 함께 자주 사용되는 데몬의 변화형은, 동사 δαιμονίζομαι(다이모노니조마이)의 분사형 δαιμονιζόμενοι(다이모니조메노이)이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뜻으로, 명사 데몬과 함께 자유롭게 호환되며 사용되었다. 

마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δαιμονιζομένους),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마 8:28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사람들의 지역에 가셨을 때에, 귀신 들린 사람(δαιμονιζόμενοι)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와 마주쳤다. . . 31 귀신들이(δαίμονες)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막 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δαιμονιζομένους)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τὰ δαιμόνια)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요 10: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δαιμόνιον ἔχει)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δαιμονιζομένο)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δαιμόνιον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이상에서 데몬이 "귀신"으로 번역된 용례 중 몇몇만 살펴보았다. 용례는 지면 관계로 다 쓸 수 없을만큼 많다. 

데몬이 홀로 사용되지 않고, 데몬에 병명이 붙어 함께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그런 방식으로 데몬이 행하는 악한 일을 명시한다. 

마 9: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κωφὸν δαιμονιζόμενον) 예수께 데려오니 ("코폰"은 "말하지 못하는""듣지 못하는")

마 12: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δαιμονιζόμενος τυφλὸς καὶ κωφός)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튜프로스"는 "보지 못하는") 

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κακῶς δαιμονίζεται)(여기서 "카코스"는 "병명을 특정하지 않지만, 많이 아프게 하는"이라는 뜻을 가질 수 있다.) 

눅 11: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δαιμόνιον κωφόν)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성경에서 데몬은 사람을 괴롭히되 특히 병으로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질병 치유와 축귀는 대개 함께 행하여졌다. 마태복음에는 병을 뜻하는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고 병명 자체와 귀신을 동일한 실재인 듯이 기술하는 구절도 있어 질병과 축귀의 밀접성을 보여준다. 

마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σεληνιάζεται셀레니아제타이)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 . .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τὸ δαιμόνιον)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예수님께서 치유하는 장면인데, 예수님의 치유는 "간질"이 아니라 "데몬을 꾸짖어 내쫓"았을 때에 일어난 것을 본다. 

특히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데몬을 많이 사용하였다. 누가의 경우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귀신"으로 번역된 용례 대다수는 "데몬"이 사용된 경우이고, 요한복음의 경우는 "귀신"이 나오는 빈도수는 적지만, "귀신"이 나오는 용례 전체가 "데몬"을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더러운 영 πνεῦμα ἀκάθαρτον


데몬과 함께 사용되는 원어는 πνεῦμα ἀκάθαρτον(프뉴마 아카타르톤)이다. 아카타르톤은 "깨끗하다" "정하다"clean는 뜻을 지닌 καθαρός(카타로스)에 부정 접두어 ἀ가 붙은 꼴이다. clean하지 않고 "unclean"하다는 뜻을 지녔다. 신약이 말하는 "귀신"은 "더러운 영"에 대한 한글 번역인 것이다.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막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눅 6:18 더러운 귀신에게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행 8: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더러운 영"이 사용된 용례를 이 외에도 많다. 개역개정은 이 경우 그냥 "귀신"이 아니라 "더러운 귀신"으로 번역하는 노력을 해주어 고맙다. 

"더러운 영"의 변형이 있다. "더러운"을 대신하여 "악하다"는 뜻을 지닌 πονηρός(포네로스, 악하다 wicked)라는 형용사가 "영"(프뉴마"에 붙는 경우이다. 마태복음 12장에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온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기서, 먼저 사용된 "귀신"은 "더러운 영"에 대한 번역이고, 뒤에 사용된 "귀신"은 "악한 영"에 대한 번역이다. 한글 번역도 둘을 달리 번역하였다. 

마 12:43 더러운 귀신이(τὸ ἀκάθαρτον πνεῦμα)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πνεύματα πονηρότερα프뉴마타 포네로테라)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고 묻는 귀신을 만난다. 이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 아니라 "악귀"라고 번역하였는데, 여기서도 아카타르톤이 아니라 포네로스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행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τὰ πνεύματα τὰ πονηρὰ)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τὸ πνεῦμα τὸ πονηρὸν)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ἐν ᾧ ἦν τὸ πνεῦμα τὸ πονηρόν)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개역개정이 프뉴마 아카타르톤을 "더러운 귀신"으로 번역하고, 프뉴마 포네론을 "악귀"라고 번역한 것은, "프뉴마"를 "귀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냐는 문제는 차치한다면 좋은 번역이다. 적어도 새번역이 아카타르톤을 "악한 귀신"이라고 번역하면서 아카타르톤과 포네론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은 것에 비하면 말이다. 

프뉴마에도 병증이 더해지는 경우가 있다. 

막 9: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πνεῦμα ἄλαλον)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아라론은 "말하지 못하는")

데몬이나 더러운 영이나 인간에게 악한 일을 행한다. 


"데몬"과 "더러운 영"의 관계


귀신이라고 번역된 두 원어가 "데몬"과 "더러운 영"인데, 이 둘은 한 존재를 일컫는 두 표현이지, 존재 자체가 둘인 것은 아니다. 

복음서에서는 번번이 한 에피소드에서 두 표현을 섞어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 그 점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부르셔서 "더러운 영"을 쫓는 능력을 주셨는데, 제자들이 나가서 쫓은 것은 "데몬"이었다.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πνευμάτων ἀκαθάρτων)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 .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δαιμόνια)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더러운 영"과 "데몬"이 혼용된 것이다. 마가복음에도 사례가 있다. 마가복음의 군대 귀신 에피소드에서 마가복음 원어는 이 귀신들린 사람을 ἄνθρωπος ἐν πνεύματι ἀκαθάρτῳ(안드로포스 엔 프뉴마티 아카타르토), 즉 "더러운 귀신"이 들리 사람이라고 묘사한다.(8, 13절에도 "더러운 귀신" 표현) 그런데 15절에 이르러서는 이 사람을 δαιμονιζόμενον(다이모니조메논) "데몬에 사로잡혔던 자)로 표현하였다. 한글 성경으로 읽으면 앞 뒤 모두 "귀신"이지만, 원어에서는 "더러운 영"과 "데몬"이 호환되어 사용된 것이다. 

막 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ἄνθρωπος ἐν πνεύματι ἀκαθάρτῳ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τὸν δαιμονιζόμενον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δαιμονιζομένῳ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이와 같이 "더러운 영"과 "데몬"이 같은 의미로 차이 없이 사용되는 경우의 용례를 더 들어보자. 

막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πνεῦμα ἀκάθαρτον)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δαιμόνιον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눅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τὸ δαιμόνιον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τῷ πνεύματι τῷ ἀκαθάρτῳ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이런 용례 외에, "데몬"과 "더러운 영"이 혼용될 수 있다는 것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구절이 누가복음 4장에 있다. 

눅 4:33 회당에 더러운 귀신πνεῦμα δαιμονίου ἀκαθάρτου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한글로는 "더러운 귀신"이라 되어 있지만, 그간 보아온 "더러운 귀신"과는 헬라어 구조가 다르다. 프뉴마와 아카타르톤 사이에 데몬이 들어 있는 형태이다. 이 표현 속에서 "더러운 영"과 "데몬"이 문자 그대로 섞였다. 


사도행전의 용례


사도행전은 "프뉴마 아카타르톤"을 선호한다. 같은 저자가 저술한 누가복음이 "데몬"을 선호하는 것을 생각하면 뜻밖이다. 그만큼 두 표현은 구별없이 섞여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5: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 . .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ὑπὸ πνευμάτων ἀκαθάρτων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행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1)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πνεύματα ἀκάθαρτα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행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πνεῦμα πύθωνα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 . .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τῷ πνεύματι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결론


이상의 성경 읽기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귀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 신약 성경이 말하는 "귀신"은 한국 문화 속에서 이해되는 귀신이 아니다. "귀신"이라는 표현이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용례 전부를 살핀 결과 그런 귀신은 나오지 않는다. 
  • 귀신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더러운 영"(과 이것의 변형), 그리고 "데몬"(과 이것의 변형)이다.
  • 더러운 영과 데몬은 인간의 혼과 관련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위치하는 영적 존재들이다. 
  • 더러운 영과 데몬은 인간에게 해악을 끼친다. 
  • 더러운 영과 데몬은 맞서고 쫓아낼 존재이지 모시고 살 존재가 아니다. 
  • 더러운 영과 데몬은 같은 존재를 칭하는 다른 두 표현이다. 
  • 더러운 영과 데몬은 군대 귀신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모양을 가질 수 있다. 
  • 목회현장에서 때로 경험하게 되는 '혼백의 모습을 한 귀신'은, 더러운 영과 데몬이 그런 모습을 취하여 다가온 것이지,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 귀신의 정체를 분명히 알면 귀신을 대적하고 이길 수 있다. 


다시 첫 부분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이상의 성경적 "귀신관"을 그 교인에게 설명해 주어, 찾아온 "귀신"이 어머니의 혼백이 아니라, "더러운 영" "악한 영" "병을 주는 영" "데몬"의 변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리고 함께 대적하여 그 더러운 영을 쫓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