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일획


"헬라파 유대인"과 초대교회 갈등에 대한 묵상 (우진성)

관리자
2024-08-11
조회수 1623

초대교회의 갈등

사도행전 6장은 초대교회가 만난 위기 이야기를 전한다. 초대교회 내부에 갈등이 불거져 표면화되었다는 것인데, 오늘 묵상 내용은 갈등 두 당사자 중 하나에 관한 것이다. 

먼저 6:1을 새번역으로 읽어보자.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었다.

갈등의 두 당사자를 새번역은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 vs.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로 표현하였다. 같은 구절을 개역개정은 "헬라파 유대인들" vs. "히브리파 사람들”로 표현하였다. 여기 언급된 이들이 누구인지 이해하는 것은 사도행전 6장이 증언하는 초대교회의 갈등 상황과 이에 대한 솔루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헤브라이오스Ἑβραιος

여기 등장하는 두 당사자 중 한쪽은 헤브라이오스Ἑβραιος인데, 우리에게는 "히브리"라는 발음으로 널리 알려진 단어이다. 헤브라이오스가 이스라엘Ἰσραήλ이나 유대Ἰουδαῖος와 다른 점은, 이 단어의 강조점이 사용 언어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헤브라이오스는 히브리어/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이 국가적 정체성에, “유다이오스”가 종교적 동질성에 방점을 찍은 표현이라면, “헤브라이오스”는 사용하는 언어를 부각하는 표현이라는 말이다. 


헬레니스테스Ἑλληνιστής

헤브라이오스에 대한 이런 이해는, 이들의 상대편에 서서 이들에게 불평을 터뜨린 이들이 누구인지 힌트를 준다.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 혹은 “헬라파 유대인”으로 번역된 단어는 Ἑλληνιστής(헬레니스테스)인데 신약에서는 사도행전에만, 그것도 딱 세 번만 나오는 단어이다. 신약 밖에서도 그 용례를 찾아보기 어려워 Ἑλληνιστής(헬레니스테스)가 지칭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단정하기 쉽지 않다. 어떤 학자들은 이들을 이방인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이들을 이방인이지만 유대인으로 개종한 사람들로 이해하기도 한다. James Dunn의 사도행전 주석에 의지하여 결론을 말하자면, Ἑλληνιστής(헬레니스테스)는 인종적 개념이나 종교적 개념이 아니라, 순전히 언어적 개념이다. 새번역의 번역 그대로 "그리스어(헬라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이다. 그렇게 그리스어를 말하는 사람이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그리스도인인지 비그리스도인인지를 헬레니스테스라는 단어를 통하여 알 수 없으며 그 점은 오직 문맥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 


헬렌Ἕλλην

달리 말하면, Ἑλληνιστής(헬레니스테스)는 그리스 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유대인일 수도 있고 이방인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Ἑλληνιστής(헬레니스테스)는 그리스 사람 혹은 이방인을 뜻하는 Ἕλλην(헬렌)과 구별된다. 헬렌은 아래 용례에서 보듯이 "그리스 사람" 혹은 "헬라 문화를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중심으로 보자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사도행전 14:1 그래서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다.

사도행전 19:17 이 일이 에베소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에게 알려지니, 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행 21:18 이튿날 바울은 우리와 함께 야고보를 찾아갔는데, 장로들이 다 거기에 있었다.  19 바울은 그들에게 인사한 뒤에, 자기의 봉사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하신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헬렌의 용법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이 단어를 통하여 "경건한 그리스 사람"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행 17:4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οἱ σεβόμενοι Ἕλληνες(호이 세보메노이 헬레네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어쨌든 헬렌은 그리스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을 뜻한다. 반대말은 유대인이 아니라 야만인(βάρβαρος바르바로스)이다. 


사도행전 6장의 헬레니스테스

헬레니스테스로 돌아와 보자. 헬레니테스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헬렌과 달리 그리스 말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그리스 사람일 수도 있고 유대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이방인일 수도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고, 비그리스도인일 수도 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사용된 헬레니스테스는 두 종류의 다른 구성원을 말한다. 대부분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 5절은 다른 구성원이 존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니골라에 주목해 보자. 그는 유대 사람이 아니었지만, 유대인으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유대인이든 아니든,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Ἑλληνιστής(헬레니스테스)로 지칭되었다. 


언어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를 낳고 갈등을 낳는다  

이렇게 6장 1절에서 보도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갈등은 언어가 다른 그룹 간에 야기된 갈등이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언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언어는 문화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특정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고,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그 방식이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분명 신앙생활의 방식도 달랐을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니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했을 것이다. 사도행전 6장에서 불거진 문제를 단순히 "구호음식을 나누는 문제"(새번역)나 "구제"(개역개정)의 문제로 보면 곤란하다. ἐν τῇ διακονίᾳ τῇ καθημερινῇ(엔 테 디아코니아 테 카싸메리네)로 표현된 이 문제는, 음식은 물론이고,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쳐진 공유 재산을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문제까지 확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헬레니스테스가 헤브라이오스를 향해 불평을 터뜨린 것인데,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오는 소통과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의 헬레니스테스 

우리는 사도행전 6장을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에는 히브리 말을 사용하는 사람(그들은 대개 기초적인 그리스어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과 헬라어만 사용하는 사람, 그렇게 두 그룹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살았을까요?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무덤 비문 중 예루살렘 교회 동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살펴보니 1/3 정도가 그리스어로 쓰여 있었다. 이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 인구의 대략 1/3이 헬라어 사용 인구였다는 것이고, 예루살렘 교회에도 그와 비슷한 비율로 헬레니스테스가 존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왜 다시 예루살렘으로 왔을까? 경제적 이유와 종교적 이유가 그들을 고국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귀향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여느 유대인들처럼 회당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회당에 가입하기보다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회당을 만들고 그곳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다. 사도행전 6장 9절이 그 모습에 대한 힌트를 준다. 

그 때에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리버디노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 가운데에서 몇이 들고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리버디노"Λιβερτῖνος(리베르티노스)는 라틴어 libertinus에서 온 헬라어인데, 이전에 노예였다가 해방된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이다. 리버디노 회당은 해방노예라는 공통점으로 모였지만, 디아스포라 유대인, 즉 헬레니스테스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회당에서 활동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예루살렘교회 갈등의 해결책-일곱 집사

5절을 통해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에 세워진 일곱 집사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모두 헬라식 이름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일곱이 선출되었는가? 이들은 각 디아스포라 회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아니었을까? 상상해 봄 직하다. 

예루살렘으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교 생활을 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루살렘교회로 모였을 때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 갈등에 대한 사도들의 해결책이 헬레니스테스 중에 일곱을 택하여 지도자로 세우는 것이었다. 이들이 세워지기 전 리더쉽은 "열둘"(the twelve, οἱ δώδεκα호이 도데카)로 불리던 사도들에게 있었다. 이들은 모두 헤브라이오스였다. 그런데 불거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그 "열둘"은 "일곱"(the seven, οἱ ἑπτά호이 헵타)을 세울 것을 제안하고 실행하였다. 그들은 모두 헬레니스테스였다. 

사실 유대인들에게 헬레니스테스의 인상은 좋지 않았다. 마카비 독립 전쟁 당시 친 헬라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마카비1서 1~2장)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 원주민인 헤브라이오스에 비해 가난했을 것이다. 교회를 위한 재정적 기여도가 헤브라이오스에 비해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불평을 터뜨렸다." 이 불평은 과연 정당한가? 따질 수 있었을 것이고 잠잠하라고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택한 해결책이 무엇을까? 사도들은 헬레니스테스 중에서 자신들과 다른 지도력을 세우자고 제안하였고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5절) 일곱 집사(호이 헵타)를 세웠다. 초대교회는 갈등이 불거진 위기 상황을 새로운 리더쉽을 세우는 기회로 선용한 것이다. 헬레니스테스 중에 지도력이 형성됨으로, 초대교회는 박해 때에 오히려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까지" 즉, 예루살렘과 유대 바운더리 밖으로 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호이 도데카들은 호이 헵타에게 안수하였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위를 기꺼이 나누어주며, 그 일곱을 권위 있는 주님의 일꾼으로 세운 것이다. 권위와 권력을 기꺼이 나누는 사도들의 마음이 놀랍지 아니한가? 이런 일이 진행된 다음,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7절)고 성경은 증언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전파된다. 


부록. 헬레니스테스의 다른 두 용례. 

사도행전 9장 29절. 여기서 헬레니스테스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그리스 말을 하는 사람들로 등장한다. 유대인이지만 그리스 말을 하면 헬레니스테스인 것이다. 

28   그래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예루살렘을 자유로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였고, 

29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과 말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꾀하였다.

사도행전 11장 20절. 19절의 전도 대상은 유대인이었다가, 20절에서는 그 대상이 이방사람으로 확대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 쓰인 Ἑλληνιστής는 Ἕλλην과 의미가 다르지 않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다.

19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를 전하였다.

앞에서 다룬 6장 1절을 포함하여 사도행전에 사용된 헬레니스테스의 세 용례를 모두 살펴 보았다. 공통점은 "그리스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헬라인일수도 있고 유대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