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소프트웨어에서 새번역으로 "사랑으로"를 검색하면 서른 개의 결과를 보여준다. 한글로는 모두 "사랑으로"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이 표현을 위해 사용된 헬라어 전치사에 따라 서로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다.
먼저 구약의 용례를 살펴보자. 이 표현은 모세의 기도에도 사용되었고,
민수기 14:19 이집트를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용서하신 것처럼, 이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κατὰ τὸ μέγα ἔλεός σου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느혜미야가 종교개혁을 추진할 때 드린 기도에도 사용되었다.
느헤미야 13:22 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지없이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κατὰ τὸ πλῆθος τοῦ ἐλέους σου 나를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시편의 기도시에서는 여러번 반복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시편 31: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또한 44:26, 51:1, 90:14 등)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약속의 말씀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사야 54:8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ἐν ἐλέει αἰωνίῳ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 31:3 나 주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주었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고, 한결같은 사랑을 너에게 베푼다.
예레미야 애가와 스바냐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표현에 등장한다.
예레미야애가 3:32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κατὰ τὸ πλῆθος τοῦ ἐλέους αὐτοῦ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스바냐 3:17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ἐν τῇ ἀγαπήσει αὐτοῦ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구약에서 "사랑으로"는 이렇게 그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사랑"에 해당하는 칠십인역역 헬라어 원문에는 아가페도 사용되었지만 자비를 뜻하는 엘레오스ἔλεος가 더 많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고, "~으로"에는 전치사 카타κατά가 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사랑으로"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면, 신약에서 사용된 "사랑으로"는 그리스도인들 서로간의 사랑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점이 구약과 신약의 용례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이다.
로마서 12:10 형제의 사랑으로τῇ φιλαδελφίᾳ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6:14 모든 일을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 하십시오.
갈라디아서 5:13b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διὰ τῆς ἀγάπης 서로 섬기십시오.
에베소서 2: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διὰ τὴν πολλὴν ἀγάπην αὐτοῦ 말미암아 . . .
에베소서 4: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 서로 용납하십시오.
에베소서 4:15 우리는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살아가십시오.
빌립보서 1:16 좋은 뜻으로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서 사랑으로ἐξ ἀγάπης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 . .
빌레몬서 1:7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ἐπὶ τῇ ἀγάπῃ σου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
앞서 구약성경이 "사랑으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주로 전치사 카타κατὰ를 사용하였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사랑으로"를 표현하는데 전치사 카타가 사용된 경우는 없다. 카타를 대신하여 여러 다양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주로 사용한 전치사는 엔ἐν이다. 엔ἐν은 위에 명기한 고린도전서 16, 에베소서 4:2, 4:15, 5;2, 이외에도 골로새서 2:2, 데살로니가전서 5:13, 디모데후서 1:13, 요한2서 1:3에서도 사용되었다. 빌립보서 1:16에서는 전치사 에크ἐκ가, 빌레몬서 1:7에서는 전치사 에피ἐπὶ가 사용되기도 하였고, 로마서 12:10에서는 전치사 없이 여격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13과 에베소서 2:4에서는 전치사 디아διὰ가 사용되었다. 헬라어의 세계에서는 "사랑으로"를 표현하는 방식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다양한 표현 방식 중에 구약에 주로 사용된 카타κατὰ, 신약에서 주로 사용된 엔ἐν, 그리고 디아διὰ의 구문론 용법에 대해 살펴보자.
전치사 카타의 구문론 용법 중에 "형벌이나 상을 정하는 기준을 나타내는 카타κατὰ"라는 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구절에 그런 용법의 카타가 사용되었다.
잠언 24:12b 그분은 각 사람의 행실대로 갚으실 것이다.
마태 16: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고린도전서 3:8b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밑줄친 부분에 카타κατὰ가 사용되었고, 이 카타κατὰ는 모두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행한대로" "우리가 수고한대로" 갚아주신다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이 표현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렇게 사용된 카타를 사용하여 "사랑으로"를 표현한 것이니 그 뜻은 분명해 보인다. 주님은 "우리가 행한 것을 근거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사랑을 근거로" 판단하고 심판하신다는 말이다. 카타κατὰ는 인과응보 원리를 표현하는데 사용된 전치사이지만, 구약은 동시에 카타κατὰ를 통하여 "은총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인과응보대로 판단하시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사랑으로" 곧 "주님의 사랑대로" 판단하실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전치사 엔ἐν의 구문론 용법 중에는 "일이 일어나는 방식을 나타내는 엔ἐν"이 있다. 엔ἐν은 영어로 보통 in으로 옮기지만,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방식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1:29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엔ἐν은 주님의 활력이 내 안에 "작용하는 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힘있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엔ἐν이 우리 마음에 적용될 때는 우리의 "마음 가짐"이나 "마음의 역동" 혹은 "마음의 태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로마서 15:32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을 안고 여러분에게로 가서, 여러분과 함께 즐겁게 쉴 수 있게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서 밑줄친 부분에 사용된 엔은 바울 사도가 로마에 가고자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기쁜 마음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는 엔ἐν을 번역할 때 "~ 마음으로"라고 해도 좋은 번역이 되겠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밑줄 친 부분의 엔 역시 "담대한 마음으로" 라고 번역하여도 손색이 없다. 이를 신약의 "사랑으로" 표현에 사용된 엔에 적용하면 번역이 단순해진다. "사랑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태도로"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디아διὰ의 구문론 용법에 대해 살펴보자. "사랑으로"에 디아διὰ가 사용된 구절은 둘이다. 갈라디아서 5:13에는 디아διὰ 다음에 소유격이 왔고, 에베소서 2:4에는 디아διὰ 다음에 목적격이 왔다. 갈라디아서 중심으로 설명하지만 에베소서의 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디아διὰ의 용법 중 하나는 efficient cause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efficient cause(이피션트 커즈)는 한글로 옮기기 어려운데, "무엇을 있게 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는 힘 또는 존재"를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여기 탁자가 있다고 하자. 이 탁자의 efficient cause는 목수이다. 목수가 이 탁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efficient cause 개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efficient cause는 존재하거나 운동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제3의 힘이나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면에서 갈라디아서 5:13의 디아διὰ 용법은 놀랍다. 서로 섬기는 행동의 efficient cause가 사랑이라는 진술이다. 내 마음이나 의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아가페가 내 섬김의 efficient cause가 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가 내 안에 들어오면 아가페는 살아 운동하여 나를 사랑하는 방향으로(섬기도록) 움직여 간다는 말이다. 내가 사랑하며 산다면 그것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아가페가 나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사랑으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 전치사 셋 카타κατὰ, 엔ἐν, 디아διὰ에 대해 살펴보았다. 카타로 표현된 "사랑으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근거롤 표현한다. 엔으로 표현된 "사랑으로"는 사랑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표현한다. 디아로 표현된 "사랑으로"는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동력을 표현한다. 한글 표현은 "사랑으로" 하나지만, "사랑으로" 안에는 이런 다양한 의미들이 들어 있다.
성경 소프트웨어에서 새번역으로 "사랑으로"를 검색하면 서른 개의 결과를 보여준다. 한글로는 모두 "사랑으로"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이 표현을 위해 사용된 헬라어 전치사에 따라 서로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다.
먼저 구약의 용례를 살펴보자. 이 표현은 모세의 기도에도 사용되었고,
민수기 14:19 이집트를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용서하신 것처럼, 이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κατὰ τὸ μέγα ἔλεός σου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느혜미야가 종교개혁을 추진할 때 드린 기도에도 사용되었다.
느헤미야 13:22 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지없이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κατὰ τὸ πλῆθος τοῦ ἐλέους σου 나를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시편의 기도시에서는 여러번 반복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시편 31: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또한 44:26, 51:1, 90:14 등)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약속의 말씀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사야 54:8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ἐν ἐλέει αἰωνίῳ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 31:3 나 주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주었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고, 한결같은 사랑을 너에게 베푼다.
예레미야 애가와 스바냐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표현에 등장한다.
예레미야애가 3:32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κατὰ τὸ πλῆθος τοῦ ἐλέους αὐτοῦ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스바냐 3:17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ἐν τῇ ἀγαπήσει αὐτοῦ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구약에서 "사랑으로"는 이렇게 그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사랑"에 해당하는 칠십인역역 헬라어 원문에는 아가페도 사용되었지만 자비를 뜻하는 엘레오스ἔλεος가 더 많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고, "~으로"에는 전치사 카타κατά가 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사랑으로"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면, 신약에서 사용된 "사랑으로"는 그리스도인들 서로간의 사랑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점이 구약과 신약의 용례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이다.
로마서 12:10 형제의 사랑으로τῇ φιλαδελφίᾳ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6:14 모든 일을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 하십시오.
갈라디아서 5:13b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διὰ τῆς ἀγάπης 서로 섬기십시오.
에베소서 2: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διὰ τὴν πολλὴν ἀγάπην αὐτοῦ 말미암아 . . .
에베소서 4: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 서로 용납하십시오.
에베소서 4:15 우리는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ἐν ἀγάπῃ살아가십시오.
빌립보서 1:16 좋은 뜻으로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서 사랑으로ἐξ ἀγάπης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 . .
빌레몬서 1:7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ἐπὶ τῇ ἀγάπῃ σου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
앞서 구약성경이 "사랑으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주로 전치사 카타κατὰ를 사용하였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사랑으로"를 표현하는데 전치사 카타가 사용된 경우는 없다. 카타를 대신하여 여러 다양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주로 사용한 전치사는 엔ἐν이다. 엔ἐν은 위에 명기한 고린도전서 16, 에베소서 4:2, 4:15, 5;2, 이외에도 골로새서 2:2, 데살로니가전서 5:13, 디모데후서 1:13, 요한2서 1:3에서도 사용되었다. 빌립보서 1:16에서는 전치사 에크ἐκ가, 빌레몬서 1:7에서는 전치사 에피ἐπὶ가 사용되기도 하였고, 로마서 12:10에서는 전치사 없이 여격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13과 에베소서 2:4에서는 전치사 디아διὰ가 사용되었다. 헬라어의 세계에서는 "사랑으로"를 표현하는 방식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다양한 표현 방식 중에 구약에 주로 사용된 카타κατὰ, 신약에서 주로 사용된 엔ἐν, 그리고 디아διὰ의 구문론 용법에 대해 살펴보자.
전치사 카타의 구문론 용법 중에 "형벌이나 상을 정하는 기준을 나타내는 카타κατὰ"라는 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구절에 그런 용법의 카타가 사용되었다.
잠언 24:12b 그분은 각 사람의 행실대로 갚으실 것이다.
마태 16: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고린도전서 3:8b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밑줄친 부분에 카타κατὰ가 사용되었고, 이 카타κατὰ는 모두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행한대로" "우리가 수고한대로" 갚아주신다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이 표현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렇게 사용된 카타를 사용하여 "사랑으로"를 표현한 것이니 그 뜻은 분명해 보인다. 주님은 "우리가 행한 것을 근거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사랑을 근거로" 판단하고 심판하신다는 말이다. 카타κατὰ는 인과응보 원리를 표현하는데 사용된 전치사이지만, 구약은 동시에 카타κατὰ를 통하여 "은총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인과응보대로 판단하시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사랑으로" 곧 "주님의 사랑대로" 판단하실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전치사 엔ἐν의 구문론 용법 중에는 "일이 일어나는 방식을 나타내는 엔ἐν"이 있다. 엔ἐν은 영어로 보통 in으로 옮기지만,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방식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1:29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엔ἐν은 주님의 활력이 내 안에 "작용하는 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힘있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엔ἐν이 우리 마음에 적용될 때는 우리의 "마음 가짐"이나 "마음의 역동" 혹은 "마음의 태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로마서 15:32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을 안고 여러분에게로 가서, 여러분과 함께 즐겁게 쉴 수 있게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서 밑줄친 부분에 사용된 엔은 바울 사도가 로마에 가고자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기쁜 마음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는 엔ἐν을 번역할 때 "~ 마음으로"라고 해도 좋은 번역이 되겠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밑줄 친 부분의 엔 역시 "담대한 마음으로" 라고 번역하여도 손색이 없다. 이를 신약의 "사랑으로" 표현에 사용된 엔에 적용하면 번역이 단순해진다. "사랑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태도로"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디아διὰ의 구문론 용법에 대해 살펴보자. "사랑으로"에 디아διὰ가 사용된 구절은 둘이다. 갈라디아서 5:13에는 디아διὰ 다음에 소유격이 왔고, 에베소서 2:4에는 디아διὰ 다음에 목적격이 왔다. 갈라디아서 중심으로 설명하지만 에베소서의 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디아διὰ의 용법 중 하나는 efficient cause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efficient cause(이피션트 커즈)는 한글로 옮기기 어려운데, "무엇을 있게 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는 힘 또는 존재"를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여기 탁자가 있다고 하자. 이 탁자의 efficient cause는 목수이다. 목수가 이 탁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efficient cause 개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efficient cause는 존재하거나 운동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제3의 힘이나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면에서 갈라디아서 5:13의 디아διὰ 용법은 놀랍다. 서로 섬기는 행동의 efficient cause가 사랑이라는 진술이다. 내 마음이나 의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아가페가 내 섬김의 efficient cause가 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가 내 안에 들어오면 아가페는 살아 운동하여 나를 사랑하는 방향으로(섬기도록) 움직여 간다는 말이다. 내가 사랑하며 산다면 그것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아가페가 나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사랑으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 전치사 셋 카타κατὰ, 엔ἐν, 디아διὰ에 대해 살펴보았다. 카타로 표현된 "사랑으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근거롤 표현한다. 엔으로 표현된 "사랑으로"는 사랑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표현한다. 디아로 표현된 "사랑으로"는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동력을 표현한다. 한글 표현은 "사랑으로" 하나지만, "사랑으로" 안에는 이런 다양한 의미들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