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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브라함이야기』는 성경을 해설한 주석책이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등장하는 창세기 11장 27절부터 아브라함의 사망을 보도하는 창세기 25장 10절까지 창세기의 본문을 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해설하고 묵상하였다. 아브라함이야기에는 두 가지 맥이 흐르고 있다. 하나는 도시문명과 충돌하는 하나님나라의 맥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양성해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와 계약이라는 맥이 있다.
아브라함의 본이름은 ‘아브람’이다. 아브람은 존귀하고 높은 귀족이 되라는 아버지의 개인주의적 염원이 담긴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은 후에 그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셨다. 아브라함은 만민의 아버지가 되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담긴 이름이다.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아브람을 부르신 까닭은 그를 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복덩이로 만들기 위해서였다(창12:2~3). 개인주의의 이름 아브람은 하나님의 계약을 통해서 보편주의의 아브라함으로 성장하였다.
성장의 기점에는 계약이 있다(창15장).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제시한 계약의 내용은 자손 사대까지 이방에서 400년 동안 노예살이를 겪을 것이고 그 후에 비로소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브람이 이 계약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망설이자 야훼께서 친히 횃불이 되셔서 쪼갠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가셨다. 하나님께서 계약의 갑으로 을의 의무까지 다 떠안으신 것이다. 창세기 15장이 보도하는 첫 계약은 일방적인 편무계약으로 마감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은 계약을 일컬을 때마다 ‘나의 계약’이라고 칭하신다. 이로써 하나님의 계약은 인간의 능력에 기초하지 않은 순전한 은혜의 계약이 되었다.
아브람은 자신의 몸에서 날 아들을 통해서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들었을 때 그처럼 유리한 약속은 선뜻 믿었다. 아브람의 공로가 있다면 오직 이 믿음 한 자락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사라는 그 약속을 믿지 않았고 몸종 하갈을 씨받이로 제공하자 아브람마저도 하갈과 동침한다. 그나마 한 자락 믿음의 실천마저도 인간적 불신앙의 오류로 미루어진다(창16장).
이에 하나님께서 다시 계약을 제시하시는데 이번에는 매우 쉬운 계약조건이다. 아기가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라는 조건이었다(창17장). 이번에는 할례의 조건을 즉시 받아들이고 아브람 자신은 물로 이스마엘까지 할례를 받는다. 할례계약이 성립하려면, 이듬해에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응답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브람과 사라는 그 약속을 믿지 않고 웃고 말았다(창18장). 이 노부부에게 생식의 능력은 그쳤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로써 할례계약마저도 아브람의 믿음이라는 공로에 근거하여 체결되지 못하였다. 두 번째 계약도 역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성립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양육하시는 택함 받은 백성은 세상 가운데서 살면서 번번이 좌절과 고통을 겪는다. 세상에는 애굽제국을 필두로 메소포타미아 국가들과 블레셋 국가가 폭행을 일삼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창14장). 아벨을 죽인 가인이 불안하여 창설한 도시들은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이 창건한 왕국으로 발전하여 지중해 문명권을 장악하고 있었다(창4:17; 10:10). 아브라함은 도시들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생존을 도모하였다(창12장; 20장). 재산이 많아지자 아브람과 롯은 헤어진다(창13장). 조카 롯은 소돔 도성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온 집안이 망하는 불행을 겪는다(창19장). 도성에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토지는 세상의 문명을 주도하는 폭력배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었다. 온 토지는 야훼의 것이건만(출19:5), 죄인들이 폭력으로 토지를 강점하여 도시국가들을 빼곡히 건설하고 있었다. 소돔의 멸망을 목도하였건만 아브라함은 그 반대쪽에 있는 그랄도성으로 이주한다. 거기서도 쫓겨난 아브라함은 폭력을 휘두르는 죄인의 도시문명에서 점점 밀려나서 브엘세바에 정주하게 되었다(창21장). 아브라함에게 온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복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블레셋의 군주 아비멜렉과 맺은 계약으로써 비로소 브엘세바에서 정주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복은 세상이 주는 복과 다르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도시문명과 충돌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지중해 문명권의 도시들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계속 그를 시험하신다. 마지막 시험은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요구였다(창22장). 믿음과 순종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모리야 산상에서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어진 것은 가족해체의 아픔뿐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사라는 대로하여 이삭을 데리고 브엘세바를 떠나 헤브론으로 단독 이주하였다(창23장). 거기서 사라는 사망한다. 아내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달려와 문상하고 황급히 막벨라 동굴을 매입하여 아내를 위한 장지로 삼는다. 온 가나안 땅을 다 주시겠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로 갔나?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고 아브라함은 서둘러 아들 이삭과 함께 살 며느리를 하란에서 데려온다(창24장). 늙은 종이 대신 가서 리브가를 데리고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는 이삭에게로 넘겨준다. 그 때까지 어머니의 천막을 치고 애도하고 있던 슬픈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영접하고 슬픈 기색을 거둔다. 아들을 장가보낸 후에 아브라함은 자신도 혼자 지내기 힘겨워서 그두라라는 여인과 재혼을 한다(창25장). 그녀에게서 여섯 명의 아들을 낳는다. 이 아들들 중에 후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 미디안 족속과 아시리아 족속의 원조가 나왔다. 이삭으로부터 버림받은 노년의 아브라함이 그토록 고독한 만년에 저지른 실수였다고나 할까!
『아브라함이야기』를 출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과제는 한국교회를 위한 설교개혁을 과제였다. 이제 성경을 새롭게 읽어야 한다는 각성이 세차게 밀려왔다. 교회가 설교하는 ‘복’의 개념, ‘언약’의 신학, ‘세상’에 대한 이해, 등등 모든 신앙적 주제들이 성경을 통해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긴박함을 느꼈다. 설교의 강단을 새롭게 해야 교회가 새로워지고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설교자가 말씀을 더 땀 흘려 읽고 메시지를 캐내려는 노력을 다할 때 열려지는 지평일 것이다. 졸저 『아브라함이야기』는 교회개혁을 위해 함께 달려가는 수많은 설교자들에게 분명 힘을 보태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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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브라함이야기』는 성경을 해설한 주석책이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등장하는 창세기 11장 27절부터 아브라함의 사망을 보도하는 창세기 25장 10절까지 창세기의 본문을 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해설하고 묵상하였다. 아브라함이야기에는 두 가지 맥이 흐르고 있다. 하나는 도시문명과 충돌하는 하나님나라의 맥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양성해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와 계약이라는 맥이 있다.
아브라함의 본이름은 ‘아브람’이다. 아브람은 존귀하고 높은 귀족이 되라는 아버지의 개인주의적 염원이 담긴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은 후에 그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셨다. 아브라함은 만민의 아버지가 되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담긴 이름이다.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아브람을 부르신 까닭은 그를 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복덩이로 만들기 위해서였다(창12:2~3). 개인주의의 이름 아브람은 하나님의 계약을 통해서 보편주의의 아브라함으로 성장하였다.
성장의 기점에는 계약이 있다(창15장).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제시한 계약의 내용은 자손 사대까지 이방에서 400년 동안 노예살이를 겪을 것이고 그 후에 비로소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브람이 이 계약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망설이자 야훼께서 친히 횃불이 되셔서 쪼갠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가셨다. 하나님께서 계약의 갑으로 을의 의무까지 다 떠안으신 것이다. 창세기 15장이 보도하는 첫 계약은 일방적인 편무계약으로 마감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은 계약을 일컬을 때마다 ‘나의 계약’이라고 칭하신다. 이로써 하나님의 계약은 인간의 능력에 기초하지 않은 순전한 은혜의 계약이 되었다.
아브람은 자신의 몸에서 날 아들을 통해서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들었을 때 그처럼 유리한 약속은 선뜻 믿었다. 아브람의 공로가 있다면 오직 이 믿음 한 자락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사라는 그 약속을 믿지 않았고 몸종 하갈을 씨받이로 제공하자 아브람마저도 하갈과 동침한다. 그나마 한 자락 믿음의 실천마저도 인간적 불신앙의 오류로 미루어진다(창16장).
이에 하나님께서 다시 계약을 제시하시는데 이번에는 매우 쉬운 계약조건이다. 아기가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라는 조건이었다(창17장). 이번에는 할례의 조건을 즉시 받아들이고 아브람 자신은 물로 이스마엘까지 할례를 받는다. 할례계약이 성립하려면, 이듬해에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응답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브람과 사라는 그 약속을 믿지 않고 웃고 말았다(창18장). 이 노부부에게 생식의 능력은 그쳤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로써 할례계약마저도 아브람의 믿음이라는 공로에 근거하여 체결되지 못하였다. 두 번째 계약도 역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성립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양육하시는 택함 받은 백성은 세상 가운데서 살면서 번번이 좌절과 고통을 겪는다. 세상에는 애굽제국을 필두로 메소포타미아 국가들과 블레셋 국가가 폭행을 일삼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창14장). 아벨을 죽인 가인이 불안하여 창설한 도시들은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이 창건한 왕국으로 발전하여 지중해 문명권을 장악하고 있었다(창4:17; 10:10). 아브라함은 도시들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생존을 도모하였다(창12장; 20장). 재산이 많아지자 아브람과 롯은 헤어진다(창13장). 조카 롯은 소돔 도성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온 집안이 망하는 불행을 겪는다(창19장). 도성에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토지는 세상의 문명을 주도하는 폭력배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었다. 온 토지는 야훼의 것이건만(출19:5), 죄인들이 폭력으로 토지를 강점하여 도시국가들을 빼곡히 건설하고 있었다. 소돔의 멸망을 목도하였건만 아브라함은 그 반대쪽에 있는 그랄도성으로 이주한다. 거기서도 쫓겨난 아브라함은 폭력을 휘두르는 죄인의 도시문명에서 점점 밀려나서 브엘세바에 정주하게 되었다(창21장). 아브라함에게 온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복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블레셋의 군주 아비멜렉과 맺은 계약으로써 비로소 브엘세바에서 정주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복은 세상이 주는 복과 다르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도시문명과 충돌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지중해 문명권의 도시들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계속 그를 시험하신다. 마지막 시험은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요구였다(창22장). 믿음과 순종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모리야 산상에서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어진 것은 가족해체의 아픔뿐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사라는 대로하여 이삭을 데리고 브엘세바를 떠나 헤브론으로 단독 이주하였다(창23장). 거기서 사라는 사망한다. 아내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달려와 문상하고 황급히 막벨라 동굴을 매입하여 아내를 위한 장지로 삼는다. 온 가나안 땅을 다 주시겠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로 갔나?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고 아브라함은 서둘러 아들 이삭과 함께 살 며느리를 하란에서 데려온다(창24장). 늙은 종이 대신 가서 리브가를 데리고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는 이삭에게로 넘겨준다. 그 때까지 어머니의 천막을 치고 애도하고 있던 슬픈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영접하고 슬픈 기색을 거둔다. 아들을 장가보낸 후에 아브라함은 자신도 혼자 지내기 힘겨워서 그두라라는 여인과 재혼을 한다(창25장). 그녀에게서 여섯 명의 아들을 낳는다. 이 아들들 중에 후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 미디안 족속과 아시리아 족속의 원조가 나왔다. 이삭으로부터 버림받은 노년의 아브라함이 그토록 고독한 만년에 저지른 실수였다고나 할까!
『아브라함이야기』를 출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과제는 한국교회를 위한 설교개혁을 과제였다. 이제 성경을 새롭게 읽어야 한다는 각성이 세차게 밀려왔다. 교회가 설교하는 ‘복’의 개념, ‘언약’의 신학, ‘세상’에 대한 이해, 등등 모든 신앙적 주제들이 성경을 통해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긴박함을 느꼈다. 설교의 강단을 새롭게 해야 교회가 새로워지고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설교자가 말씀을 더 땀 흘려 읽고 메시지를 캐내려는 노력을 다할 때 열려지는 지평일 것이다. 졸저 『아브라함이야기』는 교회개혁을 위해 함께 달려가는 수많은 설교자들에게 분명 힘을 보태어줄 것이라고 믿는다.